화가 황주리(55)는 두 자루의 붓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붓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쓰는 붓이다. 그림 그리는 재주 하나만으로도 부러움을 살만한데 글 쓰는 맵시마저도 오래전에 공인됐을 정도니 복받은 예인이다.
서로 쓰임새가 달라 보이는 이 두 가지 붓을 그는 삶을 찬양하고 사랑을 찬미하는 동일한 목적 아래 사용한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 붓으로 그림의 의미를 설명하는 섣부른 일은 하지 않는다. 글은 글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저마다 삶과 사랑의 시고 단 언저리를 부드럽게 붓으로 어루만져준다.
근작인 ‘식물학’에서도 그런 태도는 변함없이 나타난다. 작가는 그림에서 사랑이 어떻게 영글어 가는가를 식물의 생장에 빗대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왼편의 키 작은 해바라기는 감성에 치우친 풋사랑으로 애벌레 단계의 사랑이다. 오른쪽의 키 큰 해바라기는 한 단계 승화된 사랑을 의미한다. 기다림을 상징하는 우체통은 사랑이란 인내를 통해 완성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 사랑의 꽃이 활짝 핀 순간 굳게 닫힌 창문도 활짝 열릴 게 분명하다.
오는 29일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K아트 스타, 美의 제전’ 출품작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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