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23] 검은 정사각형에 구현한 절대 純粹

바람아님 2014. 4. 12. 20:39

(출처-조선일보 2014.02.22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그림'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검은 네모 하나가 덩그러니 있으니, 인쇄가 잘못됐나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전위 미술을 이끌었던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1878~1935)의 '검은 정사각형'이라는 
작품이다. '나도 그릴 수 있겠다'싶은데, 제목마저 성의가 없으니 은근히 화가 날 법도 하다. 
말레비치는 이토록 파격적인 추상미술을 '절대주의'라고 불렀고, '미술로부터 대상(對象)이라는 부담을 덜어주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정사각형 작품 사진
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정사각형, 1915년, 캔버스에 유채, 
106.2 ×106.5 ㎝,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국립미술관소장.
전통적인 미술은 늘 사물이나 사람과 같은 특정한 대상을 모방해야 했다. 회화는 실제로는 '하얀 캔버스 위에 물감을 발라 만든 어떤 형상'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와 같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어떤 사물이나 사람, 즉 물감이 만들어낸 환영(幻影)만을 보게 된다. 말레비치는 이처럼 눈속임을 목표로 했던 기존 회화로부터 벗어나, 아무런 내용과 의도가 없이 순수한 제로 상태의 회화를 추구했다.

검은 정사각형은 말레비치가 선택한 절대적으로 순수한 형태였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포괄한 색이고, 정사각형은 돌리면 원이 되고, 나누면 직사각형 혹은 삼각형이 되는, 근본적 형상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검은 정사각형에는 위계질서가 없다. 상하좌우의 구별이 없으니 방향의 옳고 그름도 없고, 보는 이가 지식인이든 무지렁이든 '검은 정사각형'이외에 더 볼 수 있는 것도 없고, 누구나 그릴 수는 있지만, 누구도 다른 이들보다 빼어나게 잘 그릴 수도 없다. 그 앞에서 결국 만인이 평등해지는 이 그림은 혁명 직전, 유토피아를 기대하던 러시아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