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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2·12 직후 전두환 제거하려다 중단했다”

바람아님 2024. 11. 27. 05:57

조선일보  2024. 11. 27. 00:36

‘미국의 한국 정치 개입사 연구’ 낸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미국은 1979년 12·12 사태를 반란으로 규정해 전두환을 예편시키려 했으나, 한국군 내의 지지가 예상 외로 탄탄한 것으로 보고 계획을 바꿨습니다. 바로 전두환 암살이었죠.”

그 직후 미국 측에 포섭된 일부 한국 군인들은 전두환의 집 주변을 감시하며 호시탐탐 저격 기회를 노렸다. 위험을 눈치챈 전두환은 세 차례나 거처를 옮기며 경비를 강화했다. 초조해진 암살조는 자동차 사고로 위장한 암살을 계획하고 여러 차례 현지 답사와 모의 훈련까지 했으나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치학자인 이완범(63·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새 연구서 ‘미국의 한국 정치 개입사 연구’ 4~6권에서 미국 정부의 ‘전두환 제거 구상’을 자세히 서술했다. 개별 내용은 그동안 각종 회고록과 증언 등을 통해 나온 것이 많지만, 이 교수는 미국 애틀랜타의 지미 카터 도서관과 한국 외교부의 문서 등 자료를 모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그렇다면 전두환 제거 계획은 왜 실패했을까? 당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4·19나 5·16 때보다 많이 약화된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더 중요한 것은, 전두환이 제거될 경우 북한의 침략 가능성이 커지게 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동북아에서 소련을 막기 위한 ‘안보’를 무엇보다 중시했던 미국은 전두환 제거 계획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완전한 보류는 아니었다. 1981년 1월 대법원이 김대중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자 미국은 서랍 속에 넣어 뒀던 전두환 제거 계획을 다시 꺼내려 했다는 것이다. 감형 조치가 이뤄진 후 김대중이 도미함으로써 이 구상은 다시 중단됐다.


https://v.daum.net/v/20241127003616165
“美, 12·12 직후 전두환 제거하려다 중단했다”

 

“美, 12·12 직후 전두환 제거하려다 중단했다”

“미국은 1979년 12·12 사태를 반란으로 규정해 전두환을 예편시키려 했으나, 한국군 내의 지지가 예상 외로 탄탄한 것으로 보고 계획을 바꿨습니다. 바로 전두환 암살이었죠.” 그 직후 미국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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