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노르스름하다. 밝은 것 같지만 명쾌하지 않고, 포근한 듯하지만 뜨겁지 않은 빛깔이다. 탁자 끝엔 책 한 권이 위태롭게 서 있다. 그 위로 마늘 한 쪽이, 또 그 꼭대기엔 수저가 놓여 있다.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진가 김시연의 ‘노르스름한’ 시리즈의 하나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일도, 가족과 친지와의 관계도, 그럭저럭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따져보면 상당 부분 그런 척하며 지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저 사진 속의 책 및 마늘과 수저처럼 어색하고 긴장된 관계를 적당히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노르스름한’ 단면을 빗대어 보여주는 정물사진이다.
신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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