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온 작가 아드리안 비야 로하스(34)가 강원도 철원군 양지리 농촌체험회관에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한국말로 말했다. "한 달 내내 여기 집들을 몽땅 쑤시고 다녔다니까요. 귀찮아 죽겠어." 이 동네 이장 정희섭(49)씨. 입으론 귀찮다 하지만 얼굴엔 웃음 가득이다.
로하스는 한 달째 이 마을에 머물고 있다. 철원군이 사들여 예술가 작업실로 만든 작은 집을 '유랑 스튜디오(Nomad Studio)'로 삼았다. 동네 주민들이 가져온 곡물로 만든 설치 작품이 마당 곳곳 널브러져 있다.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미술관엔 수많은 자본 논리가 개입돼요. 여기선 보이는 모든 곳이 전시장이에요. '공간의 공정무역(Fair Trade of Space)'이 이뤄진달까요?"
양지리 마을은 1972년 민간인 통제선 북방마을(민북마을)로 지정됐다가 2년 전 40년 만에 민통선 규제가 해제됐다. 3㎞만 가면 북한 땅. 서울보다 북한 땅이 가까운 이곳이 동시대 미술의 전시장이 됐다. 2012년 시작돼 올해로 3회를 맞는 '리얼디엠지(DMZ·비무장지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철원 지역 DMZ 주변의 '안보 관광' 코스를 따라 예술 작품을 설치하고, 관람객들이 버스를 타고 작품을 감상하는 독특한 형식의 전시다. 예술감독을 맡은 큐레이터 김선정씨는 "그전까진 방문객 시각으로 DMZ에 예술을 삽입했지만, 이번엔 지역 주민의 '삶의 현장'에 가까이 가기 위해 민통선 마을까지 무대를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총 7개국 12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천장이 무너진 폐(廢)정미소에선 첼리스트 이옥경의 즉흥 연주가(작은 사진), 주민 대피소에선 독일 작가 플로리안 헤커의 음향 작업이 펼쳐진다. 농기구를 보관하는 마을 창고엔 스웨덴 작가 존 스코그가 스웨덴의 핵 벙커를 촬영한 영상이 전시된다. 올해는 특히 영상·음향·퍼포먼스 작업이 많아졌다. 군사 대치라는 '보이지 않는(invisible) 긴장'을 좀 더 은유적이고 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양지리엔 대북 선전을 염두에 두고 조성된 민통선 마을 특유의 세트장 같은 묘한 인공미가 풍긴다. 이 부조리가 예술의 극적 효과를 더한다.
로하스는 한 달째 이 마을에 머물고 있다. 철원군이 사들여 예술가 작업실로 만든 작은 집을 '유랑 스튜디오(Nomad Studio)'로 삼았다. 동네 주민들이 가져온 곡물로 만든 설치 작품이 마당 곳곳 널브러져 있다.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미술관엔 수많은 자본 논리가 개입돼요. 여기선 보이는 모든 곳이 전시장이에요. '공간의 공정무역(Fair Trade of Space)'이 이뤄진달까요?"
천장이 무너진 폐(廢)정미소에선 첼리스트 이옥경의 즉흥 연주가(작은 사진), 주민 대피소에선 독일 작가 플로리안 헤커의 음향 작업이 펼쳐진다. 농기구를 보관하는 마을 창고엔 스웨덴 작가 존 스코그가 스웨덴의 핵 벙커를 촬영한 영상이 전시된다. 올해는 특히 영상·음향·퍼포먼스 작업이 많아졌다. 군사 대치라는 '보이지 않는(invisible) 긴장'을 좀 더 은유적이고 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양지리엔 대북 선전을 염두에 두고 조성된 민통선 마을 특유의 세트장 같은 묘한 인공미가 풍긴다. 이 부조리가 예술의 극적 효과를 더한다.
철원평화전망대, 월정리역, DMZ 평화문화관에선 각각 토마스 사라세노, 최재은, 구정아 작가의 설치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과거 미군 벌컨포 기지가 있었던 소이산 정상. 철원노동당사와 마주한 이 산 정상에 오르면 광활한 철원평야와 함께 낙타고지·평강고원·김일성고지로 이어지는 북녘 땅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여기에 캄보디아계 미국 작가 앨버트 삼레스(27)가 거울로 만든 작품이 들어섰다. 작가는 "정치 갈등이 많은 조국 캄보디아와 한국의 분단 현실을 거울이라는 매개에 담았다"고 했다.
이번 전시엔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기념해 주한 독일문화원이 5만유로(약 6700여만원)를 후원했다. 협력 큐레이터도 독일 출신의 니콜라우스 히르쉬가 맡았다. 히르쉬는 "독일 분단 때 가장 인기 있던 관광지가 베를린 장벽이었다. 분단의 최전선이 관광 명소가 되는 부조리는 흥미로운 예술의 소재"라며 "그 점에서 DMZ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퍼블릭 스페이스(공공 공간)"라고 말했다.
DMZ의 압도적 풍광과 정치적 현실 탓인지 작품이 매우 강렬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분단 당사자인 한국 작가가 바라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DMZ와 외국 작가가 보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DMZ 사이에 온도 차가 느껴지는 것도 조금 아쉽다. 전시장으로 가는 투어버스는 9월 27일까지 하루 1회 운영된다. (02)733-8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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