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겨레 2014-11-3일자]
일본서 '매신라물해' 문서 전시중
귀족들이 구입 원한 상품 목록
인삼·꿀·향로·사발 등 인기품
1300년전 신라 교역품 사재기에 열광했던 일본 귀족들의 구매 요청 목록이 일본 왕실 보물창고인 쇼소인(정창원)의 전시회에 등장했다. 일본 고도 나라의 국립박물관에서 12일까지 열리는 66회 '쇼소인'전에 선보인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란 문서다.
진열장을 가면, 8세기 나라 귀족들이 구입을 원한 당대 신라 상품들의 수십여점 명칭이 4~5장의 낡은 종이조각들 위에 조목조목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눈에 확 들어오는 명칭이 '인삼(닌진)'이다. 당시도 인기특산물이었던 듯 종이쪽마다 빠지지 않는다. '꿀' '송자(잣)' 등 먹거리를 비롯해 '계심', '우황' 등 한약재와 호분·주사 따위의 물감안료도 나온다. 백동 화로, '자파리'라고 불렀던 놋그릇, 고급거울 팔출경 같은 공예품도 있다. 신라 특산 외에도 비단길과 해로로 온 서역, 동남아 물품들도 교역했음을 보여준다.
신라는 당시 일본의 거의 유일한 국제교역 창구였다. 향로, 사발, 가위 등 뛰어난 신라 공예품들은 귀족들이 갖고싶어하는 일류품이었다. 수요가 많은 탓에 귀족들은 구매품 명칭과 대가, 수량을 적은 목록을 조정에 우선 내야 했다. 매신라물해는 이 과정에서 5위 이상의 고위 귀족들이 낸 문서다. 용도를 다한 뒤엔 일본 고대의 대표적 미인도인 도리게리츠조(조모립녀) 병풍의 뒤쪽 이면지로 붙여졌다가, 18~19세기 병풍수리 과정에서 발견돼 알려지게 됐다.
'매신라물해'는 신라인의 상술에 얽힌 흥미진진한 내력을 간직하고 있다. 문서상 연대는 천평승보 4년(752년) 6월이라고 적혀 있다. 8세기말 편찬된 일본 역사책 <속일본기>에 752년 6월 신라 왕자 김태렴이 700명 넘는 사신단과 상인들을 데려와 일왕과 만나고, 교역했다는 기록이 나와 '매신라물해' 물품들이 그때 거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태렴의 상술은 능란했다. 고켄 일왕을 알현하면서 "신라왕(경덕왕)이 직접 조공하려했으나 국정이 문란해질까봐 대신 왔다"며 "하늘 아래 일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신하 아닌 사람이 없다"며 갖은 말로 일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뻐한 일왕은 그해 6~7월 배에 싣고온 신라 교역품들을 조정과 귀족들이 모두 사들이도록 해주었다. 김태렴은 왕의 국서 없이 세치 혀로 쏠쏠한 이익을 챙긴 셈이다. 김태렴 일행을 떠나보내면서 일왕은 "앞으로 신라왕이 와서 조공을 바치라"고 명한다. 그러나 신라는 다음해 약속을 채근하러 온 일본 사신을 내쫓는다. 뒤늦게 상술에 속은 것을 알게 된 일본은 실력자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주도로 신라 침공을 추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나카마로는 난을 일으켰다가 살해된다.
공교롭게도, 전시장에는 신라침공을 추진했던 나카마로가 친필로 쓴 괄괄한 필치의 명령문서도 나와, 8세기 신라 일본 외교의 이면을 살펴보게 한다. 백제인 미마지가 전수해준 가면극 탈 기라쿠멘, 조모립녀병풍, 쇼무왕의 채색신발 등 8세기 왕실공예 명품들이 다수 나왔다. 현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80살 맞은 것을 축하해 열린 올해 전시는 주말 하루 2만명 넘는 관객들이 몰릴 정도로 성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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