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1329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한파 속 청계천에서 만난 봄 희망

한국일보 2023. 12. 25. 04:31 겨울이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계절을 잊을 만큼 따뜻했던 날씨에 해이해진 몸과 마음이 북풍 찬바람과 폭설에 단단해진다. 준비도 없이 다가온 매서운 추위에 청계천도 한적해졌다. 세차게 흘러가는 물소리만이 겨울의 쓸쓸함을 더한다. 추위를 무릅쓰고 청계천 산책에 나섰다. 곳곳에 눈이 쌓여 있고, 물이 닿은 곳에는 각양각색의 얼음이 태어나 걸으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처럼 마주한 겨울 풍경이 반가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가, 눈부신 빛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다. 빛이 오는 쪽을 바라보니 연말 분위기를 자아내려 청계천 위에 달아놓은 장식물들이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눈부심을 피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 아직 꽃잎을 품은 채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꽃송이들이 인..

[사진의 기억]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앙SUNDAY 2023. 12. 23. 00:04 수정 2023. 12. 23. 01:26 불을 밝혀야 할 시간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온다. 아직 읍내에 나간 아버지도, 막차를 타고 내려올 아들도 귀가하지 않았다.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멀리서 오는 식구에게 기다림의 신호를 보내야 할 시간이다. 사람들이 고향을 묻는다. 고향에 누가 있느냐고도 묻는다. 돌아갈 집이 있느냐,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느냐는 물음이다. 먼 길을 걸어가도 그 길 끝에 어머니가 계신 집이 있으면 고향은 언제나 달려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때는 왜 항상 막차를 탔는지 모르겠다. 그 조급함은 어머니의 기다림과 닿아 있었다. 어김없이 어머니는 불 밝히고 밥상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실..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부자의 전설이 내려오는 의령 솥바위

한국일보 2023. 12. 18. 04:32 경남 의령군 정암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에 특이하게 생긴 바위섬이 있다. 발이 세 개인 솥을 닮았다고 하여 정암(鼎巖), 즉 ‘솥바위’라고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한 도사가 이 바위섬을 보고 주변 20리(약 8km)에 큰 부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솥바위 인근 마을에서는 삼성, LG, 효성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창업주가 3명 태어났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역경 속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어낸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솥바위의 특이한 모양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이런 전설이 생겨났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기 위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https://v...

판다 가족 찰나의 순간, 앵글에 담는 사진가

조선일보 2023. 12. 7. 03:06 ‘올해 100대 사진’에 뽑힌 류정훈씨, 새벽에 달려가 새끼 탄생 장면 담아 지난 7월 7일 새벽 4시 40분. 집에서 잠을 자던 에버랜드 사진가 류정훈(52)씨는 에버랜드로부터 긴급 연락을 받았다. 새끼 출산이 임박했던 판다 아이바오의 양수가 터졌다는 내용이었다. 류씨가 20분쯤 뒤 에버랜드에 도착했을 땐 아이바오가 새끼 판다 한 마리를 출산한 상태였다고 한다. 1시간 40분쯤을 더 기다리자 다시 한번 양수가 터지고 두 번째 판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국내 최초 판다 쌍둥이 자매 ‘루이바오’와 ‘후이바오’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류씨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 쌍둥이 판다 자매 탄생의 순간을 담았다. 그렇게 촬영된 사진은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2023년 올해의 1..

'올해의 환경사진상'에 선정된 사진 한장: 들소 무리는 초원 아닌 모래밭에서 살아간다

허프포스트코리아 2023.12.02 12:44 자연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사진 공모전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이와 달리 영국의 국제 환경 자선단체 시웸(CIWEM=Chartered Institution of Water and Environmental Management)이 주최하는 ‘올해의 환경사진상’은 자연이 직면한 위기에 초점을 맞춘 공모전이다. 16회째를 맞은 올해 공모전 수상작이 발표됐다. 출품작 다수가 기후 위기에 처한 지구의 모습과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담았다. 올해는 159개국 사진작가들이 경쟁에 참가했다. 대상은 단백질식품으로 쓰기 위한 곤충 사육장 사진이 차지했다. 이탈리아 토리노대 연구진이 대체식품 연구용으로 기르고 있는 이 곤충은 북미가 원산지인 아메리..

[사진의 기억] 사진으로 슬픔과 화해하기

중앙SUNDAY 2023. 11. 18. 00:04 이언옥의 사진 ‘슬픔의 질감’ 시리즈는 마음속 감정인 슬픔을 사진으로 시각화함으로써, 그 감정을 감각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한 작업이다. 살아오는 동안 느꼈던 숱한 슬픔들. 원인이 된 구체적 기억들은 이미 사라졌으나, 느낌과 정서는 남아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문득 나타나곤 했다. 아련하게 남은 슬픔의 느낌과 정서가 주변을 둘러싸는 듯한 순간을 만날 때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커튼을 젖히고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을 내다보는 소녀의 뒷모습처럼. 카메라는 아날로그를 사용했다. 대상을 정보로 처리하는 디지털과 달리 빛을 물성으로 받아들이는 필름의 특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일반 인화지 대신 종이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선명하게 담아내는 인화지와 달..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서래섬 왜가리에게 배운 삶의 지혜

한국일보 2023. 11. 13. 04:31 서울 서초구 반포 한강공원 서래섬 주변을 산책하는데 전에 보지 못했던 갯벌이 보였다. 서해 바닷가도 아닌데 한강에도 갯벌이 있다니 마냥 신기했다. 알고 보니 서해 바닷물의 영향으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할 때는 가끔 생겨난다고 한다. 한강에도 썰물과 밀물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강은 서해와 상류 지역 댐들의 영향권 안에 있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아도 댐에서 다량의 물이 방류되면 강물이 공원으로 범람하는 경우도 있다. 노을빛이 쏟아질 무렵 한강에서 갯벌을 구경하니 제법 운치가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풍경을 즐기다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왜가리 한 마리에게 시선이 멈췄다. 언제 날아갈지 궁금해 한참 동안 왜가리를 지켜봤..

아름다운 제주바다 - 수중사진 챔피언은?

중앙SUNDAY 2023. 11. 11. 00:02 수정 2023. 11. 11. 01:28 화면 가득 은빛으로 반짝이는 치어들이 인공 어초를 넘나들고, 쏠배감펭 두 마리가 그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사냥감을 고르고 있다. 그 뒤로 이 광경을 느긋하게 지켜보는 다이버도 있다. 2023 제주수중사진챔피언십에서 챔피언에 선정된 양충홍 작가의 ‘사냥꾼’ 작품이다. 2023 제주수중사진챔피언십이 11월 2일부터 5일까지 100여 명의 수중사진가와 다이버가 참가한 가운데 제주 해역에서 열렸다. 올해부터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자로 나서 대회는 더욱 알차지고 선의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나흘 동안 바닷속에서 숨죽인 채 벌어진 치열한 경합에서 나온 사진은 광각·접사·생태·창작 4개 부문에서 각각 금·은·동·장려상 4장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