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1329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인생’을 닮은 댑싸리의 빛깔

한국일보 2023. 10. 30. 04:30 지난주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霜降)도 지났다. 겨울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주변의 가로수에도 단풍이 물들어간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가을의 정취가 가득하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가을이 아쉬워 경기 연천군 댑싸리공원을 찾았다. 댑싸리는 7, 8월 한여름에 꽃이 피는 일년생 초본식물로 1.5m 내외로 자라며, 이를 재료로 마당을 쓰는 빗자루를 만든다. 가을엔 단풍이 들면서 붉은색으로 변해 관상용 식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 도착한 댑싸리공원은 붉은색 댑싸리가 현란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붉은색뿐만 아니라 다양한 파스텔 톤의 댑싸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을 다해 말라 있는 황톳빛 댑싸리도 석양에 빛나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색..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안개 속에 빛나는 저 단풍잎처럼

한국일보 2023. 9. 25. 04:32 지난주 토요일은 밤낮의 길이가 같은 추분이었다. 한낮은 아직 더위가 남아있지만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계절의 변화는 이렇게 천천히, 우리의 옆으로 다가온다. 자연의 변화를 확인하려 이른 아침 경기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서호공원을 찾았다. 이곳은 조선 정조 때 조성된 관개 저수지인 ‘축만제’를 품고 있다. 푸른 호수와 농촌진흥청 시험답(試驗畓)이 있어 가을을 만끽하려는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주변이 어두워 산책 나온 사람들은 가로등 불빛을 의지했다. 짙은 새벽안개까지 드리우자 앞사람의 형체만 어슴푸레 보였다. 문득 눈앞에 펼쳐진 길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길과 닮았다고 느껴졌다. 안개와 단풍은 서로 ..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비를 맞고 깨어난 노랑주걱혀버섯

한국일보 2023. 9. 11. 04:31 동네 작은 공원을 지나다 자주색 벤치에서 물을 먹고 자라는 신기한 생명체를 발견했다. 처음엔 사람의 발자국이나 먼지가 켜켜이 쌓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선명한 노란색을 띤 각양각색의 작고 어여쁜 버섯이었다. 노란색 투명한 몸체에 하트 등 다양한 모양의 버섯들이 마치 숲속에서 춤추는 작은 요정처럼 생동감이 넘쳐났다. 이 버섯의 이름은 노랑주걱혀버섯. 봄부터 가을까지 침엽수의 고사목이나 쓰러진 나무줄기에서 무리 지어 피어나는데, 주걱이나 사람의 혀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재미난 이름이 붙었다. 모양이나 색깔이 너무 예뻐서 독버섯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맛이 달콤하고 부드러워 국이나 찌개에 많이 넣어 먹는다고 한다. 이토록 귀한 버섯이 어떻게 도심..

[조용철의 마음풍경] 빗방울 속 코스모스…세월이 유수, 이미 가을이라네

중앙일보 2023. 9. 3. 07:00 세월을 이길 장사 없다더니 기세등등 불볕더위 물러갔네. 폭염 팔월 밀쳐내고 구월이 왔네. ■ 촬영정보 빗방울이 선명하도록 산그늘 쪽 어두운 배경을 선택하고 정상 노출보다 어둡게 촬영했다. 접사 기능이 좋은 스마트폰으로 촬영. 아래 사진은 마크로렌즈 촬영. https://v.daum.net/v/20230903070036457 [조용철의 마음풍경] 빗방울 속 코스모스…세월이 유수, 이미 가을이라네 [조용철의 마음풍경] 빗방울 속 코스모스…세월이 유수, 이미 가을이라네 세월을 이길 장사 없다더니 기세등등 불볕더위 물러갔네. 폭염 팔월 밀쳐내고 구월이 왔네. 코스모스 철없이 폈다 했더니 세월이 유수러니 이미 가을이라네. 빗방울도 싱그러운 미소를 짓네. ■ v.daum.net

[사진의 기억] 그 걸음, 더 멀리 널리

중앙SUNDAY 2023. 9. 2. 00:04 바구니를 든 사진 속 처녀처럼, 그도 사진기를 들고 성큼성큼 걸었을 것이다. 어쩌면 처녀보다 먼저 맞춤한 지점에 도착하기 위해 달음질쳤을지도 모른다. 키 큰 미루나무 혹은 양버드나무 우듬지가 잘리지 않게, 처녀가 달려가는 방향의 끝에서 처녀를 반겨줄 수 있도록 초가집들은 화면 오른쪽에 유순하게 모아두었다. 이윽고 처녀가 논두렁길 가운데 도달함으로써 화면의 중앙에 안착했을 때, ‘철컥’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어느 날, 필름도 아니고 한 번에 수십 컷을 연속 촬영할 수 있는 디지털은 더더욱 아니고, 유리로 된 건판 한 장을 갈아 끼워야 한 컷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였다. ‘논길의 처녀’로 불리는 위 사진은 무허가 직접 만든 ..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정감 어린 해 저무는 언덕배기 집

한국일보 2023. 8. 22. 04:30 부산 영도구 산동네에 서서히 해가 저물면 언덕배기의 집들도 하나둘 불이 켜진다. 과거 부산항으로 들어오던 외국인 선원들이 영도 산동네의 야경을 이탈리아 나폴리에 비유하곤 했단다. 하지만 외국인의 눈에 비친 화려한 산동네의 풍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빈집이 늘었고, 한밤중에도 불 꺼진 집이 많아졌다. 영도구는 지난해 산업연구원이 예측한 전국의 50개 소멸우려지역 중 하나다. 생활인구가 감소하고 노인인구가 증가한 까닭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도시의 생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달동네 이미지에서 탈피해 이름 있는 카페들이 생겨나면서 젊은 층의 ‘핫플레이스’로 점차 변모하고 있다. https://v...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삶의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낙조’

한국일보 2023. 8. 15. 04:30 전북 부안의 채석강 옆 격포해수욕장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잠시 식고 제법 시원한 바닷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잠시 후 바다 위로 펼쳐질 아름다운 낙조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연인은 팔짱을 끼고, 할아버지는 손자의 손을 잡고 일몰을 지켜보았고,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기에 낙조의 풍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카눈이 무사히 지나가고 또다시 불볕더위가 찾아왔다. ‘더위의 끝’인 말복과 ‘가을의 문’인 입추도 지났지만 더위는 쉽게 식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무더위라도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다. 때마침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얼..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한여름 새벽 사랑을 일깨워 준 자귀나무꽃

한국일보 2023. 8. 8. 04:32 6~8월에 피어나는 여름꽃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으며, 주로 공원이나 정원수로 가꾼다고 한다.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나무다. 꽃이 짝을 지어 피어나고, 밤이 되면 잎이 서로를 마주 보며 닫히는 모습 때문이다. 아스팔트도 녹아내릴 것 같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은 꽃말처럼 사랑의 힘이 아닐까. 휴가철,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휴양지로 향하다 자귀나무꽃을 발견하게 되면 잠시 걸음을 멈추는 것도 좋을 듯하다. 꽃말처럼 우리에게 한여름 무더위 대신 사랑을 일깨워 줄 추억을 선사할지 모를 일이다. https://v.daum.net/v/20230808043232256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한여름 새벽 사랑을 일깨워 준 자귀나무꽃 [왕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