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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조선왕조실록] 경희궁 신축 반대 민심을 다독이다

바람아님 2015. 7. 10. 09:47

노컷뉴스 2015-7-10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경희궁 건설 당시 많은 백성들의 집과 토지가 수용됐는데, 보상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1617년(광해 9년) 광해군은 별궁인 경희궁(건축 당시 명칭은 경덕궁)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에 있는 경희궁 자리는 왕의 기운이 서려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광해군이 인조의 생부의 땅을 접수해서 또다른 궁을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백성들의 땅과 집도 강제 수용됐는데, 보상금 지급이 계속 지연됐습니다.

게다가 임진왜란의 여파로 백성들의 삶이 힘겨운데 새로 궁궐을 짓는데 대한 여론도 좋지 않아 민심이 흉흉했던 것 같습니다.

 

광해군은 "지금같이 인심을 헤아릴 수 없을 때에 근거없는 말을 퍼뜨려 인심을 선동하는 걱정을 면할 수 없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화합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며 자신도 민심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광해군은 "비록 모든 백성들을 만나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대궐 터 안으로 들어간 집에 대해서라도 일일이 값을 지급해 준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달 안으로 빨리 지급하라"고 강하게 지시했습니다.

 

 

■ 세종 10년 (1428) : 계집종의 유산을 뺏으려한 관리를 의금부에서 추국케 하다.

⇒ 조선 초에 계집종도 재산을 가질 수 있었고 이를 상속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 세종 21년 (1439) : 전 중추원사가 병이 중하므로 오늘 부터 7월 그믐까지 매일 얼음 1정을 주도록 하다.

■ 광해 9년 (1617) : 이궁 건설로 철거한 집값을 빨리 지불할 것을 다시 재촉하다.
⇒ 새로 짓는 궁궐에 수용된 백성들의 집값을 빨리 지불하라고 지시했다.

■ 숙종 36년 (1710) : 충청도 온양에서 사대부가 노비의 아들을 죽인 것을 처벌케 하다.
⇒ 양반들이 아무리 천한 노비라도 함부로 죽이면 벌을 받았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CBS노컷뉴스 도성해 기자] holysea6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