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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환구단에서 바라 본 한.중.일

바람아님 2015. 9. 2. 09:58

중앙일보 2015-9-1

 

지난 주 어느 날 시내 조선호텔 코스모스 룸에 한.중.일(韓中日)에 관심을 가진 인사들이 모였다. 이 날은 한중일협력사무국(TCS: 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의 일본 출신의 이와다니 시게오(岩谷滋雄) 2대 총장이 이임 인사를 하고, 3대 사무총장으로 부임한 중국의 양허우란(楊厚蘭) 총장이 취임 인사를 하는 외교 행사였다.

한중일협력사무국은 2011년 9월 한.중.일의 협력추진을 위해 3국 정부에 의해 설립된 국제기구이다. 동 사무국은 사무총장과 2명의 사무차장이 중심이 된다. 사무총장은 2년 임기로 현재 한국-일본-중국 순으로 임명된다. 양허우란 총장의 2년 임기가 끝나면 다시 한국의 사무총장 순번이 된다. 역시 2년 임기의 사무차장은 사무총장을 맡은 국가가 아닌 다른 두 나라가 차장이 된다. 사무총장과 차장은 상하 서열이 아니고 3국을 대표하기 때문에 각자 거부권이 있어 총장의 혼자 결정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의사결정은 3국 대표의 컨센서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사무국의 주요 역할은 1) 한중일 3국간 협의체인 정상회담과 외무장관회의 지원 2) 한중일 3국의 재난대비 도상훈련과 비즈니스교류회 등 새로운 협력사업 발굴 3) 한중일 3국의 협력과 이해증진을 위한 국제포럼 개최 4) 아세안, EU 등 타 국제기구와의 협력 등이다.

 

이와다니 사무총장은 지난 2년간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였지만 결국 그 행사를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는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양허우란 신임 총장은 과거 서울 근무와 중국 외교부에서 한반도.북핵 문제 대사를 역임한 경험으로 막중한 책임을 느끼면서 사무총장의 직무를 자신 있게 수행할 의지를 보였다. 2년 전 이맘 때 이임식을 한 신봉길 초대 사무총장도 참석하여 처음으로 한.중.일 3국의 사무총장이 나란히 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 대사가 참석하고 서울 주재 대사들도 다수 보였다.


행사장에서 최근 한.중.일 정세를 생각하면서 창밖을 바라보니 3층 팔각정이 큼직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오후 6시가 지났는데도 늦여름의 긴 낮 시간 때문에 환하게 눈에 들어오는 황궁우(皇穹宇) 팔각정은 이 곳이 대한제국의 환구단 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the Great Han Empire)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황제로서 중국 및 일본과 대등하며, 서구열강에게는 독립된 제국으로서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앞에 환구단(?丘壇)을 만들고 그 부속 시설로 황궁우를 건립하였다. 과거 중국의 사신이 기거하였고 청국군대가 한 때 주둔했던 남별궁 자리이다. 지금의 조선호텔뿐만이 아니라 롯데호텔(과거 반도호텔)과 백화점이 포함되는 넓은 지역이다.

사실 고려시대까지는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天祭 제천행사)가 있었지만 조선조에서는 중국의 압력으로 천제는 하늘의 아들(天子)인 황제만 할 수 있고 왕은 그러한 권한이 없다고 자제했다. 이제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천제를 당당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天圓地方)지다’라는 동양의 전통 우주관에 따라 천제의 제단을 둥글게 만든다. 그래서 환구단 또는 원구단(圓丘壇)으로 부른다.


중국 베이징에는 자금성의 4배 규모의 거대한 수림을 동반한 천단(天壇 the Temple of Heaven)이 있다. 이는 베이징의 동서남북에 일월천지(日月天地)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있고 천제를 지내는 천단은 베이징의 남쪽에 위치하여 규모가 가장 큰 제단이다. 지금은 공원으로 개방되어 있다.


천단 공원에는 천제를 위한 원구단(圓丘壇 the Circular Mound of Heaven)이 있다. 원구단은 하늘을 바라보는 텅 빈 공간으로 문자 그대로 둥근 제단이다. 원구단 북쪽에 천제 시 사용하는 신패가 안치되어 있는 황궁우(皇穹宇 the Imperial Vault of Heaven)가 있다. 단층의 둥근 건물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거대한 기년전(祈年殿 the Hall of Prayer for Good Harvest)이 있다. 기년전은 천안문 자금성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건물로 높이 38m로 3층 구조 전각이다. 이름 그대로 중국의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는 특수 실내 제단이다.


한중일협력사무국의 사무총장 이.취임 행사가 거행된 소공동의 조선호텔은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과 연고가 깊은 곳이다. 조선조 태종의 둘째 딸 경정(慶貞)공주가 결혼하여 왕실에서 궁(宮)을 지어 주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소공주동(小公主洞 작은 공주골)’이라고 불렀다. 줄여서 소공동이 되었다.


150여년 후 선조는 소공동 일부에 인빈 김씨의 소생으로 요절한 의안군(義安君)을 위해 궁을 지어 주었다. 이 궁은 임진왜란 때 서울을 점령한 일본군의 총대장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군대가 주둔하였다. 우키타 군은 종묘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에 크게 패하고 부상까지 입어 의안군의 집으로 주둔지를 옮겼다고 한다. 일본군이 물러 간 후에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 군대가 주둔하였고 그 후 중국(청) 사신의 숙소(영빈소)로 사용되었다. 그러한 연유로 임오군란과 청일전쟁 시 파병된 청군이 주둔하기도 하였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만방에 선포하고 독립의 상징인 환구단을 조성한지 13년이 되는 해인 1910년 일본은 대한제국과 병합조약을 맺고 조선총독부를 설치 한반도를 통치한다. 조선총독부는 서울을 방문하는 일본 또는 외국의 요인이 숙박할 수 있는, 도쿄의 데이코쿠 호텔(帝國호텔 1891년 개업)과 같은 영빈관이 필요하였다.
총독부는 경성(京城 서울)역에서 멀지 않고 조선은행(현재 한국은행 본관)과 경성부 청사(현 시청)에서 가까운 환구단을 헐고 서양식 호텔 신축을 계획하였다. 총독부는 일본 고베에서 활동하고 있던 독일 건축가 게오르그 데 라란데(Georg de Lalande)에게 설계를 맡겼다. 베를린 공대를 졸업한 게오르그는 조선총독부 (구 국립 중앙박물관)의 건물도 설계하였다. 호텔에는 국내 처음으로 오티스(Otis)사가 제작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당시 애국 청년들이 황실이 제천행사를 하는 신성한 지역에 호텔 건립을 반대하여 신축현장을 기습하여 수비병을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호텔은 완공되어 1914년 10월10일 ‘조센호테루(Chosen Hotel)’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30년간 많은 일본 또는 친일 인사들이 다녀갔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한반도의 38도 이남에 미군의 군정이 실시되고 군정청의 사령부가 이 ‘조센호테루’에 주둔한다. 미군이 물러 간 후 한국 정부가 인수 ‘조선호텔(Chosun Hotel)’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계속한다. 독립 대한민국이 당시 조선의 국명을 모두 대한으로 고쳤지만 조선이 그대로 유지된 것은 이 호텔의 이름과 조선일보사 정도로 보인다.
1958년 화재로 당시 4층의 호텔 건물이 거의 전소하였다. 이 때 정부가 호텔을 완전히 헐고 환구단을 복원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당시 외국인의 숙박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한제국의 환구단 복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호텔은 복구되어 1970년 미국의 스타우드 그룹과 제휴 20층 건물의 ‘웨스틴 조선호텔’로 발전한다. 1995년 신세계 백화점 그룹이 웨스틴 소유 분을 전량 인수하여 ‘신세계 조선호텔’로 완전 민영화되었다. 환구단의 복원은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금년 가을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개최될 전망이 높다고 한다. 2012년 5월에 마지막 한중일 정상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국무원 총리,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참석하였다. 이번에 한국에서 개최될 경우 3년여 만이다. 새로 부임한 양허우란 사무총장의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