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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러일전쟁 110년

바람아님 2015. 9. 10. 07:39
한국경제 2015-9-8

1905년 5월27일 새벽. 경남 진해만에 은거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일본 연합함대에 전문이 전해졌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러시아 최강 발트함대가 동해에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쓰시마해전에서 발트함대는 불과 24시간 만에 궤멸했다. 사령관조차 포로가 됐고 38척 중 절반이 수장됐다. 결국 러시아는 9월5일 포츠머스강화조약을 맺고 조선과 만주에서 손을 떼야 했다.

일본의 승리는 예상외였다. 당시 러시아 전력은 패권국인 영국조차 두려워 할 정도였다.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 후 일본은 뤼순(旅順)전투, 펑톈(奉天·현재의 선양) 회전에서 이겨 승기를 잡았다. 그 과정에서 사망자만도 8만명에 달했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일본도 버티기 힘들었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1905년 초 ‘피의 일요일’, ‘포템킨 학살’ 등 반란과 혁명에 휘말려 전력을 집중하기 어려웠다.


러시아는 발트함대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함대는 희망봉을 거쳐 8개월간 지구 반바퀴(2만8000㎞)를 돌아야 했다. 영국이 수에즈운하를 막은 탓이었다. 마라톤 풀코스를 뛴 지친 선수와 홈링의 쌩쌩한 선수가 벌인 격투기였으니 승부는 이미 난 셈이었다.


이순신 장군을 흠모하고 연구했던 도고 제독은 쓰시마해전에서 ‘정(丁)’자형 포진을 폈다. 학익진을 모방한 것이다. 나중에 도고는 넬슨에 버금가는 군신(軍神)으로 추앙받자 “해군 역사상 군신은 오직 이순신 장군뿐이다. 나를 이순신과 비교하는 것은 그에 대한 모독이다”며 겸손해했다.


러일전쟁은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던 러시아와 북진하던 일본의 필연적인 충돌이었다. 동양의 신흥 일본이 북극곰 러시아를 이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에선 황인종이 백인종에 승리한 전쟁임을 부각시켰다. 아베 총리가 전후 70주년 담화에서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는)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다”고 했을 만큼 일본에는 자랑스런 역사인 반면 한국에는 치욕의 시작이었다.


지난 주말(5일)은 러일전쟁 종전 1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동양의 맹주가 된 일본은 1차대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폭주기관차처럼 돌진해 갔다. 시바 료타로는 “일본이 정상적인 국가였던 것은 러일전쟁까지였다. 그 이후론 술에 취해 말을 타고 달리는 여우 같은 나라가 됐고, 패전으로 여우의 환상은 무너졌다”고 했다. 러일전쟁 승리로 인한 자만심이 1945년 패망을 불러왔다는 얘기다. 한 세기 전 역사가 지금도 동북아를 짓누르고 있다.


오형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