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한국, 미·중 대립구도 깨는 게임 체인저 돼야”

바람아님 2015. 11. 11. 08:24

[중앙일보] 입력 201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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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 구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돼야 합니다.”

 마르티 나탈레가와(사진) 전 인도네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호텔신라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한국이 두 강대국을 화해로 이끄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중국해 사태 등에서 한국이 미·중 사이에 끼여 어느 한 편을 편들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있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한국은 두 나라를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며 “한국이 미·중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닐 경우 ‘고래 사이에 낀 새우’ 신세이지만 두 나라를 화해하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한국의 입지는 그만큼 넓어지고 국제적 영향력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탈레가와 전 장관은 9~10일 호텔신라에서 열린 ‘J글로벌-채텀하우스 포럼 2015’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2009~2014년 인도네시아 외무장관을 지내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 사이의 무력 사용 거부와 갈등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담은 발리선언Ⅲ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는 2013년 주요 20개국 회원국 중 중견국(middle power)인 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태국·호주 5개국으로 구성된 MIKTA 창설에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 석사, 호주국립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데 남중국해 사태로 미·중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고민이다.

 “남중국해 사태는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두 강대국의 세력 다툼이라 할 수 있다. 두 나라는 글로벌 문제의 해결책이 돼야 하는데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다. 미·중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이러다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두 강대국이 대결로 치닫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

 -한국은 미·중에 비하면 약소국인데 어떻게 미·중 화해를 이끌 수 있나.

 “군사력·경제력의 잣대로 국력을 재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이슈별로 국력이 달라진다. 한국은 녹색 기술과 한류를 필두로 한 소프트파워에서 이미 강대국이다. 한국·인도네시아 등은 국제사회가 따라야 하는 규범·규칙을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미·중도 이 규범·규칙을 따르도록 해 예측 가능한 국제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MIKTA 창설 주도자로서 중견국의 역할은.

 “개인적으로 중견국이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교 건설자(bridge-builder)라고 부르고 싶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주도적으로 창설했는데 서로 상대국이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닌가 의심한다. TPP나 AIIB 모두 경제 협력체임에도 미·중이 주도하며 정치적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 이를 한국이나 인도네시아가 주도했다면 이런 의심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 협력체를 만들 때는 내용 못지않게 누가 주도했느냐가 중요한 만큼 가교 건설자들이 나설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봉쇄하려 하는가.

 “봉쇄는 냉전 시기 사고 방식이다. 당시 상대 진영의 불이익이 자기 진영의 이익이라는 제로섬 게임 마인드가 강했다. 더 이상 양자택일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현재 미·중은 경제적으로 밀접히 연관돼 있다. 동아시아의 환경이 유동적이며 항구적으로 변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동적 균형(dynamic equilibrium)’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국 등 이해 당사국들이 공동 안보와 공동 번영의 원칙을 기반으로 국제 규칙·규범을 만들 책임이 있다.”

글=정재홍, 사진=김성룡 기자

 

 

[J글로벌-채텀하우스 포럼] “아시아의 운명 미·중에 못 맡겨 … 독자 목소리 내자”

[중앙일보] 입력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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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글로벌-채텀하우스 포럼 2015’가 9일 개막했다. 이날 첫 세션 ‘지역 안보의 과제’에서 토론하는 게르하르트 사바틸 주한 EU대사, 로빈 니블렛 채텀하우스 대표,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바버라 데믹 전 LA타임스 베이징지국장(왼쪽부터). [조문규 기자]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선 압도적인 한 세력의 출현을 막아야 하며, 이를 위해선 단순한 힘의 균형이 아니라 역학 관계에 주목해야 합니다.”

 마르티 나타레가와 전 인도네시아 외무장관은 9일 서울 중구 호텔신라에서 열린 ‘J 글로벌-채텀하우스 포럼 2015’ 기조 연설에서 “변화하는 지정학·지경학적 환경에서 힘의 우위를 점하려는 국가 간 분쟁을 방치해선 안 된다”며 “역학 관계를 지속적·역동적으로 조정하고 외교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세계적 싱크탱크인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채텀하우스)와 중앙일보·유민문화재단·JTBC가 공동주최했다.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은 개회사에서 “동북아를 포함한 전 아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거대한 힘에 내맡길 순 없다. 아시아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중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미·중 평화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축사에서 “동북아 다자주의의 확대는 남북 간 긴장 완화는 물론 동북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한반도가 불신의 악순환을 끊고 신뢰의 선순환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달라”고 말했다.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는 오찬사에서 “역내 국가들이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10일 발언자와 참석자 신분을 공개하지 않는 ‘채텀하우스 룰’에 따라 비공개 라운드테이블 토론을 진행한다.

글=이동현 기자

 

 

[백가쟁명:유주열]남중국해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인가?

중앙일보 2015-11-10

남중국해의 불침항모
중국은 2014년 초부터 실효 지배중인 남중국해의 난사군도(Spratly Islands)의 산호초를 매립하여 7개의 인공섬을 건설, 국제법상 영유권을 인정받아 해양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은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용납하지 않고 세계 상선의 3분의 1이 통행하고 연간 5조 달러의 물동량이 움직이는 남중국해에 대한 통상과 안보이익을 중국에게 넘길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남중국해가 조상이 남긴 영토이므로 미국의 간섭을 부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5월 미 해군당국은 매립이 완성되어 일부 인공섬에서는 3000m급의 대형 활주로가 건설되어 중국의 불침항모(不浸航母)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으로서는 해외 무역로를 보호하기 위한 해군력 강화가 필수였다. 2012년 후진타오 주석은 대국으로서 적절한 해상 통제권을 가질 수 있는 대양해군의 건설을 강조하였다. 중국으로서는 해양대국으로 가는 길목이고 앞바다(midland sea) 같은 남중국해를 확실히 장악해야했다. 중국은 역사를 인용 임의적으로 그은 9개의 선(九段線)이내 즉 남중국해의 80%가 중국의 영해라고 주장한다. 구단선의 모양이 남중국해 전체를 U자 형태로 싸고 있어 ‘소의 혀(牛舌)’라고 부른다

 

햄릿형 오바마 대통령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국제 규범이나 국제법에 위배됨에도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허약함을 알게 된 중국은 난사군도에 인공섬을 건설하고 12해리 이내에 외국 군함의 진입을 막는 강경한 태도로 보였다. 미 해군 당국은 중국의 주장을 무시하는 12 해리 이내의 자유항행을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 너무 신중하여 햄릿이라는 별명을 얻은 오바마 대통령은 9월 하순에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정상 간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대화로 해결코자 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6월 서니랜즈 정상회담 이래 시진핑 주석을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순진함이 있었는지 모른다.


지난 9월 하순 워싱턴의 미중 정상 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남중국해의 매립을 중단하고 모든 국가에게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를 보장하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시 주석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정상회담에 희망을 걸었던 오바마 대통령은 더 버틸 수 없었다.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중국이 주장하는 영해 12 해리 이내 미국 군함의 자유항행을 허가하였다.

 

'지리는 운명이다.(Geography is destiny.)'
오바마 대통령의 허가 이후 하와이의 미 해군 사령관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자 미국의 군함이 중국이 주장하는 영해에 실제 들어올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미국 해군은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母港)으로 하는 이지스 구축함 라센호(9200톤)를 파견했다. 라센호는 난사군도와 가까운 말레시아의 항구에서 10.27 출발하여 중국이 주장하는 12 해리 이내로 유유히 들어갔다.


중국은 ‘의도적 도발(deliberate provocation)’이라고 경고하면서 중국의 구축함 란저우호가 일정 거리를 두고 라센호를 추적하였으나 충돌을 없었다. 미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항공모함을 파견하여 자유항행을 정기적으로 계속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중국도 난사군도의 입장을 양보할 수 없다. 기존 입장의 양보는 통치의 정통성과 관련되어 중국 공산당의 입지를 크게 훼손할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매립지를 인정하면 항공모함 수십 대의 가치가 있는 섬이 생겨 남중국해가 중국의 내해(內海)가 되고 동맹국의 신뢰를 잃게 된다. 더구나 남중국해는 중요한 수송로(sea lane)뿐만이 아니라 77억 배럴의 석유가 확인되었으며 예상매장량은 280억 배럴로 천연자원의 보고(寶庫)이다.


미국이 자유항행을 1-2년 전에 감행하였더라면 중국의 인공섬 건설이 어려워 문제의 싹은 미리 제거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운 분석도 나오고 있다. 뉴욕 타임즈는 남중국해라는 풀장을 덩치 큰 시 주석이 모두 차지하여 뒤늦게 ‘아시아 회귀’라는 튜브를 들고 헐레벌떡 찾아 온 오바마 대통령이 수영할 공간이 남아 있지 않은 황당한 모습의 만평을 게재하였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미국과 중국이 위험한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난사군도의 7개의 매립지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연상시킨다.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없다고 하지만 중국이 부상할수록 미중 두 나라의 핵심이익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투키디데스(BC465-BC400)는 고대 그리스의 장군이자 역사학자이다. 기원전 5세기 해양세력으로 신흥 강대국이 된 아테네와 기존의 패권국 스파르타와의 패권투쟁을 그린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란 역사서를 저술했다. 그는 서문에서 국가 간의 관계는 신(神)의 개입이나 정의보다 패권(軍事力)의 기반 하에 이루어진다면서 역사는 과학적이고 현실적임을 주장하였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스쿨 학장을 역임한 그래함 앨리슨(1940- )교수는 서양 역사에서 패권국과 신흥대국 사이 패권의 교대는 반드시 전쟁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음에 착안하여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란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앨리슨 교수는 신흥대국(rising power)은 기존 패권국(established power)으로 하여금 공포(fear)를 느끼게 하고 이것이 전쟁으로 에스카레트 된다고 주장했다. 아테나와 스파르타의 전쟁이 불가피하게(inevitable) 만든 것은 패권국 스파르타가 느끼는 신흥대국 아테네에 대한 공포였다.


페르시아의 침략을 격퇴한 신흥대국 아테네는 델로스 섬을 중심으로 인근 도시 국가를 연합 델로스 동맹을 맺어 스파르타의 패권에 도전한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통하여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장악하고 있는 스파르타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테네는 코린트 지협을 장악하면서 서부 지중해로 진출하려고 하자 스파르타와 충돌하게 된다. 이것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작이다. 남중국해를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전략과 유사하다. 28년간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가 신흥대국 아테네에게 승리함으로써 패권을 지키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진 동아시아의 나라들
동아시아의 역사에서도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찾아 볼 수 있다. 16세기 임진왜란 때에는 신흥강국 일본이 한반도를 통해 기존 패권대국 중국(明)을 침공코자 하였으나 실패한다. 그리고 19세기 말 청일전쟁에서는 신흥강국 일본이 청국에게 승리하여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한다. 20세기 초에는 일본이 청국에 이긴 여세를 몰아 러시아와의 전쟁(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한다. 일본은 아시아의 패권을 바탕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으나 태평양의 기존 패권 국가인 미국은 일본에게 승리함으로써 패권을 지킨다.
20세기 중반 소련은 중국의 지원을 받고 북한을 사주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 50년 전 실패한 러시아의 남하정책 꿈을 다시 이루려고 하였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군에 의해 좌절된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주장한 개혁 개방 정책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무섭게 성장하였다. GDP 규모로 2010년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위가 되었다. 개혁 개방 30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을 지속해 온 중국은 중화문명의 부흥을 강조하는 중국몽을 국정지표로 삼았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아시아 회귀
중국몽을 위한 글로벌 파워(패권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계 어느 곳이라도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대양해군의 능력을 요구된다. 그러나 중국은 1860년 베이징 조약이후 동해로 연결된 영토를 러시아에 할양하였기에 동해 바다에 군함을 띄우지 못한다. 북한의 나진 선봉지역에 중국의 관심이 큰 것은 동해에 접한 군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는 미국의 함대가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대양 해군을 가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중국은 서태평양의 섬을 사슬처럼 이어 제1 도련선 및 제2 도련선을 설정하여 외국 함대의 접근거부(Anti Access A2)와 진입불가지역(Area Denial AD)을 설정했다. 제1 도련선은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오키나와 필리핀 서쪽과 보르네오 북쪽 해역을 연결하고 제2 도련선은 괌 사이판 파푸아 뉴기니를 넘어 태평양 안쪽으로 연결하는 섬을 연결한 방어선이다. 최근에는 알라스카와 알류산 열도부터 하와이와 뉴질랜드에 이르는 제3 도련선까지 거론되고 있다. 명초 정화(鄭和)의 해양세력을 복원하겠다는 해양대국굴기의 전략이다.
미국은 A2AD 전력을 무력화하는 ‘에어 씨(Air-Sea) 배틀’ 전투개념을 발전시키고, 냉전기에 형성되었던 대 소련 전략인 중추(미국)와 부채살(아태 연안국)의 양자동맹 관계인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전략을 부활시키는 등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펴고 있다.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이라고도 부르는 미국의 전략은 중국의 제1 및 제2의 도련선을 다시 포위하는 거대한 초승달 전략(Great Crescent)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신형대국관계(a new type of great power relations)를 요구했다. 이는 대국이 된 중국의 핵심이익을 미국이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더 이상 인정 않자 미국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태평양은 미국의 핵심이익 권으로 20세기 이후 미국은 태평양을 자신의 내해(lake)로 생각하고 태평양에 들어오려는 어느 나라도 용납하지 않았다.


중국은 군사력이 따르지 않는 현실을 감안 태평양에 민감한 미국을 피해 유럽으로 향하는 서진(西進)의 정책을 썼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다. 중국과 유럽을 잇는 대륙과 해상을 그물망처럼 연결하는 옛 실크로드를 연상시키는 정책이다.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이 있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통해 서부 태평양으로 나가려던 계획이 미일동맹 강화로 어렵게 되자 서남쪽으로 진로를 바꾼 것이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龍)이 미국이라는 독수리를 피해 머리를 서쪽으로 돌린 셈이다.

 

중국판 먼로주의
일부 학자들은 중국은 먼로주의를 통해 미 대륙을 지배한 미국을 모방하여 먼로주의 방식을 아시아에 적용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1823년 미국의 제임스 먼로 대통령은 의회연설에서 유럽열강으로 하여금 더 이상 미 대륙의 주권 국가에 대한 간섭을 거부하였다. 유럽 열강에게 ‘아메리카 인을 위해 아메리카를 떠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먼로 대통령 사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팽창주의 정책에서는 ‘루스벨트의 귀결(Roosevelt Corollary)'이라는 이름으로 먼로주의는 미국의 미 대륙에 대한 패권주의로 변질되었다.


최근 중국이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를 선언하자 많은 아시아의 나라들은 먼로주의의 데자뷰(旣視感)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과거 미국이 먼로주의를 내세워 유럽의 미 대륙의 간섭을 배척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결국은 아시아의 패권국가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고 있다. 중국이 기회 있을 때마다 영불칭패(永不稱覇 영원히 패권국이 되지 않겠다)라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난사군도의 산호초를 매립하여 인공섬을 만들고 있음을 예를 들고 있다.
사실 미국은 18세기 말부터 미주 대륙의 헤게모니를 추구하였고 19세기말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하여 이를 완성하였다. 미국은 자신과 대등한 경쟁자(peer competitor)를 용납하지 않았다. 세계 1차 세계 대전을 통해 독일제국을,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일본제국과 나치 독일을 그리고 냉전을 통해 소련을 제거하였다. 이제 5번째의 경쟁자로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중국의 딜레마와 시마(習馬)회담
중국은 미국의 남중국해에서 우위(dominance)를 용납하고 싶지 않지만 군사력(muscle)을 움직이기에는 시기상조(premature)임을 안다. 중국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중국으로서는 당분간 유소작위(有所作爲 필요한 역할은 한다)의 전략을 접고 새로운 도광양회(韜光養晦 칼날의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중국은 경제 협력을 카드로 이용 미국의 동맹국에 접근한다. 최근 중국의 영국에 대한 거액 투자로 시 주석의 영국 방문 시 대단한 환대를 받은 경우이다. 뉴욕 타임즈의 만평에서는 미국의 애완견인 영국이 미국이 붙잡고 있는 개의 목줄을 떼어 버리고 중국이 주는 맛있는 먹이를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과거사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일본을 포용하려는 정책을 펼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경제 성장의 속도가 실속되어 실업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일본기업 투자 유치의 불가피한 점도 있겠지만 강건한 미일동맹을 흔들어 보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고 본 것이다.
지난 11.7 시진핑 주석은 싱가포르에서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을 분단 66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 ‘시마(習馬)회담’을 성사시켰다. 2016년 1월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 국민당에 힘을 실어 주면서 대만의 친중화(親中化) 전략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11.8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의 NLD(국민민주연맹)당이 승리하듯 대만 총통선거에서 차이잉원(蔡英文)의 민진당이 승리하면 중국과 대만간의 긴장의 파고는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난형난제(難兄難弟)의 미중
‘세계경제의 룰은 중국 같은 나라가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야한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협상이 끝났을 때 한 말로 중국에 대한 불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이 일본 호주와 함께 포위 전략을 펴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호 불신(mutual distrust)이다.
미국의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중 간에 갈등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난사군도를 중심으로 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빨려 들어 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미중 간에는 협력해야 할 사항이 많다. 두 나라의 무역거래가 연간 5500억불 이상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상호 의존도가 높다.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도 서로 협력해야 한다.


이번 라센호의 파견에도 미국은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 전면 대결의 의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선단을 보내지 않고 구축함 1척을 보냈고, 라센호의 항로가 국제법상 무해항행이 인정되는 산호초 근처이며, 라센호가 중국뿐만이 아니고 필리핀 베트남 등이 매립하여 주장하는 영해의 12 해리이내에 먼저 진입한 후 중국의 인공섬에 접근한 것 등이다. 그리고 미중 두 나라의 해군 최고 책임자인 존 리차드슨 해군 참모총장과 우승리(吳勝利) 해군 사령관이 10.27 라센호의 항행에 이어 10.29 화상회의를 하였다.

 

‘뉴 노말’의 출구전략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지난 11.4 말레시아에서 개최된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에서 난사군도를 놓고 미중 간의 합의가 되지 아니하여 공동선언문 채택이 무산되었다. 앞으로도 터키에서 개최예정인 G20정상회의(11.15-16), 필리핀에서 개최예정인 APEC 정상회의(11.18-19) 그리고 말레시아에서 개최예정인 동아시아(EAS)정상회의 등 아세안 관련 회의(11.21-22) 등에서 미중 양국의 정상이 수차례 만나는 다자회담이 기다리고 있다. 미중간의 마찰이 이러한 다자회의에서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미중 양국은 출구를 찾아야 한다. 중국이 긴장 완화를 위해 인공섬 건설을 중지하고 미국도 이에 대한 무력행사를 자제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난사군도의 인공섬 매립으로 남중국해가 자유항행할 수 있는 공공재(public goods)로서의 기능이 침해 받을 경우 피해가 예상되는 당사국들도 목소리를 내야한다. 한국의 경우에도 남중국해는 무역량의 30%, 석유수입의 90%가 통과하는 생존의 해상로이다. 미중 간의 정상 또는 고위급이 회담을 통해 ‘남중국해 분쟁당사국 행동수칙(code of conduct)’을 구체화하면 미중간의 군사대결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간에는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뉴 노말(新常態)’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국제 질서에 있어서 자유(liberal)체제를 선호하는 미국과 제한(restrictive)체제를 주장하는 중국은 서로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남중국해는 중국의 부상과 함께 당분간 차가운 전쟁(冷戰 cold war)이 아닌 위험한 평화(熱和 hot peace)가 계속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미중의 태평양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면서 아시아의 운명을 미중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