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미·일, 북핵 논의하다 남중국해 언급..한국 선택 압박/[노트북을 열며] 불화의 여신 에리스

바람아님 2016. 1. 20. 00:18
중앙일보 2016-1-18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정부가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공조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미·중 간 대립으로 한국 외교가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고민은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급 협의에서도 드러났다. 대북제재 외에도 남중국해 문제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그동안 직접 개입을 꺼리며 “국제규범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론만을 내세웠던 문제다.

 16일 밤 일본 외무성 이쿠라(飯倉) 공관의 기자회견장엔 임성남 외교부 1차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 사이키 아키타카(齊木昭隆) 일 외무성 사무차관이 나란히 섰다. 한·미·일 외교차관급 협의를 마친 이들은 “‘철저하고 포괄적인 대응’을 통해 실질적 대북제재 조치를 시급히 취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로 중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토니 블링컨(左), 왕이(右)

 토니 블링컨(左), 왕이(右)

 

 그러다 갑자기 주제가 남중국해 문제로 바뀌었다. 질문도 없었는데 블링컨 부장관이 “오늘 주된 논의는 국제규범 준수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문제를 포함, 이런 규범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 관심을 공유했다”고 했다. 블링컨 부장관이 3국 외교차관급 협의를 계기로 중국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이어 사이키 차관도 이날 남중국해 문제가 논의됐다고 소개했다. 임 차관만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고려대 김성한(국제대학원) 교수는 “대북 압박에 초점을 맞추려는 한국과 3각 공조의 개념을 확장하려는 미·일의 인식 차이를 보여 준 장면”이라며 “북한 문제에 중국이 필요한 한국은 당연히 언급을 피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중국 외교부는 16일 홈페이지에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디디에 부르칼테르 스위스 외교장관의 회담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왕 부장이 공동기자회견 중 북핵 관련 질문에 답한 내용만 따로 떼어 소개했다.

왕 부장은 “유엔 안보리가 필요한 대응을 하는 걸 지지한다”면서도 “안보리의 새 결의에 대한 각 측의 생각과 관점이 완전히 일치하진 않는다”고 했다. 또 “중국은 한반도 핵 문제 모순의 (책임 있는) 당사자가 아니다. 각 측이 더 이상 감정적인 발언을 하지 않길 희망한다”고 했다.


외교가 소식통은 “미국과 한국 여론 등이 북한 핵실험을 중국의 정책 실패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간접 표출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국의 고민스러운 선택을 요구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도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화여대 박인휘(국제관계학) 교수는 “미국은 이참에 한국의 중국 경사론 등 그간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며 “한반도 안보라는 우리의 관심과 동아시아에서의 입지 강화란 미국의 이익을 잘 분리해 접근하지 않으면 그간 쌓은 ‘한·중 관계’ 자산이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협력구도를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는 “한·미·일 공조에 적당히 속도를 내 지금처럼 중국에 간접 압박 메시지를 보내면서 중국엔 한·중 간 전략채널 강화를 제안해 볼 만하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북핵에 특화한 한·미·중 전략대화를 주도, 한국에 유리한 외교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산정책연구원 봉영식 선임연구위원도 “사드나 남중국해 문제에선 결정을 미루면서 한·미·일 대북 군사정보 교류를 격상하는 방안이 있다. 이렇게 하면 중국을 너무 서운하지 않게 하면서도 미·일엔 실질적 조치를 취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미 국무부의 서열 1·2위가 잇따라 중국을 찾아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압박할 계획이다. 블링컨 부장관(20~21일)에 이어 27일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베이징(北京)을 방문한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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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불화의 여신 에리스

중앙일보 2016-1-18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는 기원전 13세기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하자 심술이 났다. 그래서 잔칫상에 황금사과를 던져 트로이 전쟁을 일으켰다. 노련한 에리스는 섭섭한 감정을 험담하거나 이간질로 화풀이하지 않았다. 황금사과에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문구만 새겼을 뿐이다. 에리스는 그 황금사과를 놓고 여신들(헤라·아프로디테·아테나)이 치열하게 ‘미모 대결’을 할 줄 알았고 결국 10년 전쟁으로 가는 대참사를 유도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여신 에리스가 이번에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수소폭탄을 던졌다. 노련하게 심술이 왜 났는지 설명하지 않았고 수소폭탄에 문구도 새기지 않았다. 에리스는 문구를 새기지 않아도 김 제1위원장이 자신의 의도대로 한반도에 불화를 일으킬 줄 알았던 모양이다. 에리스의 예상은 적중했다. 김 제1위원장은 핵 버튼을 눌렀고 한반도는 다시 긴장이 조성됐다. 미국은 전략폭격기 B-52를 한반도 상공에 띄웠고 한국은 대북 확성기를 다시 틀었다. 북한도 이에 질세라 대남 전단을 살포했고 무인기를 군사분계선으로 침범시켰다. 한·미·일은 중국에 대북 압박의 수위를 올리라고 요구했고 중국은 오히려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에리스의 ‘심술’이 한반도에 제대로 먹히고 있다.


 트로이 전쟁이 10년 동안 끌었던 이유는 인간들만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의 전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트로이 왕자 헥토르는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신들이 싸움을 더 원했다. 트로이 편에는 황금사과를 받은 아프로디테·아폴로·아르테미스, 그리스 편에는 황금사과를 못 받은 헤라·아테나·헤파이스토스가 있었다. 남북한도 상황이 비슷하다. 탈냉전 이후 20여 년 동안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평화를 원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6·25전쟁에서 피를 흘린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국익을 앞세우다 보니 그 한계를 넘지 못했다. 이번에도 남중국해에서 갈등을 벌인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로 연장전을 확산할 조짐이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대중국 견제 강화 전략으로 동북아의 패권을 움켜쥐려고 한다. 지난해 9월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핵에 한목소리를 냈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직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히려 시리아 내전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불편했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중국은 미국이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으면서 자꾸만 중국에 책임을 떠넘긴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요구대로 시늉을 낼지언정 주도적 대북제재 및 적극적 해결에는 회의적이다. 그러면서 과거처럼 시간을 벌려고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대충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런 계산 속에서 과연 한국이 미·중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들의 국익에 맞춰주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에리스의 ‘심술’이 밉기만 한 이유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