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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 덕수궁 돌담을 허문다는 발칙한 생각

바람아님 2016. 3. 8. 23:38
조선일보 : 2016.03.08 03:00

이충일 도시·교통 전문기자 사진
이충일 도시·교통 
전문기자
낮 기온이 18도까지 올라간 지난 4일 금요일, 덕수궁 돌담길은 산책객으로 붐볐다. 영국대사관 입구~대한문~정동제일교회 앞~덕수초교로 이어지는 전 구간이 그랬다. 반면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 보니 늘 그렇듯 한산했다. 고궁이 문을 닫는 월요일이었다면 아예 적막했을 것이다. 문득, 사람 키 두세 배인 이 돌담을 없애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았다. 도심의 고도(孤島)처럼 스스로를 가두었던 궁 내부가 들여다보이고, 시민과 관광객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면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

1960년대 덕수궁의 시청 쪽 담장(140m)은 돌담이 아닌 철책(鐵柵)이어서 시야가 확 트였었다. 그 시절 종로에서 태어나 덕수초교에 입학한 나는 덕수궁을 자주 드나들었다. 덕수궁의 애사(哀史)까지는 몰랐으나, 다양한 건물과 연못·분수·쉼터가 있는 친숙한 공간이었다고 기억한다. 철책이 격자형인데다, 위에 쇠꼬챙이 따위도 없었기에 월담도 어렵진 않았다.

덕수궁의 시청 쪽 돌담을 없애고 투시형으로 대체하려는 계획은 1959년 자유당과 이듬해 4·19 후 민주당 정권 때 예산까지 책정하고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그러다가 5·16 직후인 1961년 말에 태평로 확장(6m)을 겸해 시행됐다. 준공식은 송요찬 내각 수반이 나와 시범 활보한, 제법 큰 행사였다. 하지만 철거를 앞두고 찬반은 팽팽했다. 이상백 서울대박물관장, 소설가 정비석, 극작가 유치진 등은 찬성하고 사학자 김원룡과 유홍렬, 성악가 김자경 등은 반대했다. '도시 미관' 대(對) '고적 가치'의 우선순위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 철책은 1968년 태평로 재확장(16m)을 위해 철거된 뒤 현재의 돌담으로 바뀌었다. 대한문은 궁역(宮域)이 자꾸 축소되는 데 따른 문화재위원회의 반발로 옮기지 못해 도로 복판에 섬처럼 고립됐다가 1970년 현 위치로 해체 이전됐다. 애초 대한문은 지금의 시청 광장 자리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 이후 후퇴를 거듭한 것이다.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났다. 문화유산을 소중히 간직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높은 돌담 안에서 홀로 세월을 보내는 덕수궁은 행복할까. 문화재도 보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아닐까. 돌담이 보호 시설이라기보다, 시민 격리 장벽으로 더 기능해온 것은 아닐까. 이를 일부라도 헐자고 하면 아마 문화재청은 노숙자로 인한 화재 우려 등을 들며 펄쩍 뛸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 철거가 아니라, 현대 감각에 맞춘 리모델링은 어떨까. 덕수궁 못잖은 역사적 시설인 미국 백악관이나 영국 버킹엄궁도 낮은 펜스를 쓰고 있다. 덕수궁은 그 입지 덕에 뉴욕 센트럴파크나 런던 하이드파크 같은 열린 녹색 공간으로의 잠재력도 충분하다. 게다가 마침 덕수궁 바로 옆의 국세청 남대문 별관 터도 개방형 공원으로 단장되고 있으니 돌담에 작은 변화라도 준다면 효과는 클 것이다. 영국대사관과의 의견 차이로 교착 상태에 빠진 덕수궁길 잔여 구간 개설에도 돌담 철거가 결정적 지렛대가 될지 모른다. 사방에 담장을 둘러치는 권위적 보호가 아니라, 역사적 가치에 도시 기능과 시민 친화적 관점을 융합한 새 운영 모델을 찾아낼 순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