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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 명작 기행] (12) 웅장한 山勢·깎아지른 절벽…노르웨이의 '순수한 침묵'을 담다

바람아님 2013. 11. 25. 18:49
                    ● 존 크리스티안 달 '발드르 계곡'

험난한 지형의 스칸디나비아…자연으로부터 '신의 존재' 인식
19세기에 꽃 핀 낭만주의 회화…이성보단 주관적 감수성 중시
'있는 그대로' 그려 낸 풍경화…북유럽인의 진솔한 품성 담겨     

 

           


존 크리스티안 달의 '발드르 계곡'.(1845년,캔버스에 유채,51×68.5cm,독일 만하임시립미술관

 

 

예전에 만났던 북유럽 친구들은 대체로 말수가 적었다. 그들이 먼저 말을 건네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화를 나눌 때도 크게

소리내지 않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들은 마치 '침묵은 금'이라는 진리를 신봉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프랑스에서 본 북구인

들은 그랬다.

스웨덴에서 온 마리아가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스칸디나비아는 워낙 추운 곳이라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고 했다.

얘길 나누다 보면 금방 입이 얼어붙기 때문에 대화를 아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방인들에겐 과묵하고

퉁명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는 날씨만 혹독한 게 아니다. 이곳의 지형은 혀를 내두를 만큼 험난하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고생대와 중생대의

조산운동으로 1000~2000m에 달하는 평평한 고원이 된 이후 제4빙하기에 빙하에 의해 침식되면서 수많은 호수와 피오르

해안이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형성된 웅대하고 기기묘묘한 자연의 스펙터클은 경외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노르웨이의

들쑥날쑥한 해안선 길이는 2만여㎞에 달해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거리와 맞먹는다고 한다. 작지만 큰 나라인 셈이다.

이 같은 유별난 기후와 험준한 지형은 오래 전부터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기도 했고 한편으론 위대한 신에 대한 경외심을

유발했다. 서부와 남부 유럽이 자연의 정복을 외치며 신의 존재에 회의를 품었을 때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여전히 자연을 경외

했고 그 속에서 신의 존재를 느꼈다.

이런 북구적 기질은 19세기 전반 낭만주의 회화가 꽃필 때 그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났다. 차가운 이성보다는 작가의 주관적

감수성을 중요시했던 낭만주의자들은 중세 혹은 이국 문화에 대한 동경을 표하는 한편 자연을 열렬히 숭배했다.

노르웨이의 미술사학자인 안드레아스 아우베르트(1851~1913)는 이처럼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 대한 관심이 싹트게 된

직접적인 배경을 장 자크 루소의 자연철학에서 찾았다. 루소는 인간의 순수한 감정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을 통해 가장 잘

표현된다고 보고 가장 아름다운 자연은 시내 덤불 산 큰바위 절벽이 있는 풍경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야생의 자연은 독일의 랑게,프리드리히,노르웨이의 존 크리스티안 달 같은 화가들을 북구의 장엄한 지형의

숭배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의 '뤼겐의 백악절벽'(본지 2010년 11월20일자 참고)에서 보듯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들

이 본래의 자연을 변형해 이상적인 풍경을 창조해낸 데 비해 달은 북구에서 발견되는 자연의 드라마틱한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달은 23세 때 고향을 떠나 코펜하겐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일생의 대부분을 북부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보냈다. 그렇지만 틈만 나면 고국 노르웨이로 스케치 여행을 떠나 그곳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1844년 네 번째 노르웨이 여행 후 그린 '발드르 계곡'은 그런 북구의 장엄한 지형을 사실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발드르는 노르웨이에서도 손꼽히는 절경 중 하나로 수도인 오슬로와 항구도시 베르겐 사이

에 자리하고 있다. 남으로는 바스파레트의 야생 지대,북으로는 요툰하이멘산의 극적인 단층

지대와 마주하고 있는 이곳은 유럽 최대의 빙하를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림에서 화가는 화면을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눠 배열하고 있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사선을 그리며 묘사한 전면의 공간은 인간이 자연과 합일을 이루는 공간이다. 전나무로

울타리를 친 듯한 이 공간에서는 인간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구불구불 정겨움이 묻어나는 비포장의 마차로에선 한 여인이 먼 길을 떠나는 남편을 배웅

하고 있고 그 오른쪽 산기슭의 양치기는 이 뭉클한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전나무 숲

너머로 전개되는 계곡 뒤편의 공간은 야생의 자연으로 상층부가 평평한 웅장한 고원을 이루고 있는데 전경의 공간과 엇갈리게

배치돼 자연의 웅혼한 기상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꿈틀거리는 거대한 절지동물 모양의 산맥은 점차 작아지면서 원경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다. 저 멀리서 산은 하늘 공간과 만난다.

그곳에서 하늘과 땅은 하나의 색채로 묶인다. 관람객의 시선도 화가의 의도대로 전경에서 중경을 거쳐 원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그 사이 우리의 마음도 자연의 일부가 된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이 말수가 적은 것은 꼭 추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진솔한 품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 진솔함은 자연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자연은 한편으론 인간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지만 언제나 변치 않는 진리로

자신의 선한 품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자연의 진실을 얘기하는 데는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말은 무성한 탑을 쌓는다. 얼마나 많은 말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이성은 마비되고 품성은 황폐화

됐던가. 달의 때 묻지 않은 풍경은 우리에게 그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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