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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 명작 기행](11) '마음의 고향' 아크로폴리스…잊혀진 금빛 노을도 되살아났네

바람아님 2013. 11. 16. 10:50
● 레오 폰 클렌체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풍경'

헬레니즘이 싹튼 아테네…18세기 유럽이 사랑한 곳
비잔틴제국 때 크게 훼손…폐허가 된 아크로폴리스
건축가 겸 화가였던 청년, 설계도처럼 정밀히 스케치…옛 분위기까지 재구성                

 

18세기 말의 유럽은 그리스 문화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 애틋한 사랑의 씨앗은 이성과 논리로 사상의 텃밭을 갈던 계몽주의

자들에 의해 뿌려졌고 이들의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질서와 고요한 아름다움을 숭상했던 고전주의 미술 부활의 거름이

됐다.

17세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그랜드 투어로 아테네의 고대 유적지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점, 고고학적 발굴로 찬란한 고대

문명의 실체가 드러난 것도 이러한 흐름을 자극했다.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를 비현실적인 전설로 여겼던 유럽인

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근대국가의 건설을 꿈꾸던 지식인들은 고전주의 미술에 주목했다. 그들은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의 건축양식을 민족주의와

시민적 미덕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 특히 근대적 민족국가를 지향하던 독일에서는 지방 소국 군주들이 그리스 양식의 건축

물을 민족주의의 상징물로 인식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그릭 리바이벌(그리스 복고)'로

불리는 그리스 건축의 복사판들이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아테네는 예루살렘과 함께 서구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세계를 절대자의 피조물로 바라보

는 헤브라이즘과 달리 우주를 신의 타락의 결과물로 보고 인간중심적 문명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헬레니즘은 이곳 아테네에서 싹을 틔웠다. 서구 근대문명의 근간이 된 합리주의와

과학주의,민주주의는 아테네를 빼고 얘기하기 어렵다. 아테나 여신을 수호신으로 받드는

이 도시국가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자신들을 닮은 신들의 성역을 만들어놓고 아고라에서

자신들의 이상을 펼쳤다.

그러나 일찌감치 서구문명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던 이 도시는 330년 비잔틴 제국의 수중에

들어간 이후 사람들의 뇌리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빨리 잊혀져버렸다. 아크로폴리스는

이때부터 고난의 가시밭길에 들어섰다. 비잔틴 제국 시기(330~1453)에 파르테논은 성모 마리아를 위한 성당으로 전용됐고,

아테네 백작령이 됐을 때 아크로폴리스는 백작의 궁전이 돼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

1453년 오스만튀르크의 수중에 들어간 뒤에는 터키군의 지휘부가 들어섰고 에렉테움은 총독의 개인 저택으로 사용됐다. 더

끔찍한 사태는 1687년 베네치아군의 공격에 의해 이뤄졌다. 당시 파르테논은 터키군의 화약고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포격을

받아 처참하게 파괴됐던 것이다. 아크로폴리스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세기 초 영국의 엘긴 백작이 파르테논의

프리즈와 박공의 조각상들을 해체해 대거 밀반출했던 것이다.

30여년 후인 1843년 그 폐허 앞에서 레오 폰 클렌체라는 한 젊은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바바리아 왕국의 건축가 겸

화가였던 그는 루드비히 1세 국왕의 명에 따라 이곳에 파견됐다. 그의 임무는 아크로폴리스의 입구인 프로필리움을 본떠 수도

뮌헨에 왕의 광장 입구를 건축하는 것이었다. 그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프로필리움을 실측하고 아크로폴리스의 전경을 정밀

하게 스케치했다. 귀국 후 그는 이 스케치를 토대로 아크로폴리스의 옛 모습을 복원했는데 그냥 건물만 복원한 게 아니라 당대

의 분위기까지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아레오파구스의 이상적 풍경'이다. 그림에서 화면 중심부의 우뚝 솟은

바위 언덕과 신전들이 자리한 곳이 바로 아크로폴리스다. 그 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은 아레오파구스 언덕이고 왼편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시장터인 아고라다. 묘사의 중심인 아크로폴리스를 보면 오른쪽의 도리아식 신전이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

이다. 이 신전 내부에는 13m 높이의 아테나 여신상이 안치돼 있었다고 한다. 1879년께 파리의 한 미술학도가 그린 추정 복원도

는 신전 내부의 본모습을 짐작하는 데 참고가 된다.

 

파르테논 신전의 왼편에는 파르테논의 축소판인 듯한 신전 모양의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입구로 프로필리움이다. 프로필리움 위쪽에는 높이 10m의

거대한 아테나 여신상이 서 있는데 오른손에는 창을,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다. 아테네 앞

바다의 수니온 곶을 지나는 배에서 보면 아테나 신상의 도금한 창끝이 번쩍거려 일종의 등대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가 성역이라면 이곳을 둘러싼 주변은 세속의 영역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서쪽

아래 화폭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아레오파구스 언덕으로 도시국가 아테네의 재판이 이뤄진 곳이었다. 그림을 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아마도 재판의 광경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왼편 저 멀리 보이는 시가는 시민들의

일상적 삶이 이뤄진 아고라로 사람들은 그곳에서 물건을 사고팔았고 정치가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에

게 자신의 사상을 설파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화가가 건축가여서 그런가. 정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마치 건축적 축도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잊혀진 유럽인의 마음

의 고향이 화가의 붓끝을 타고 생생하게 살아난다. 화면의 생동감은 빛을 다루는 솜씨에 의해 더 한층 강화된다. 화면의 왼편

아고라에 퍼진 금빛 저녁노을을 보라.그 일몰 직전의 노을은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환히 비추며 이제 막 신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있다.

노을의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전의 대리석에서 반사된 빛은 다시 굴절돼 아레오파구스의 재판정까지 손길을 뻗친다. 그것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인간 문명의 개화를 찬미하는 축복의 빛처럼 보인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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