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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 명작 기행] (9) 검투사 선혈 흐르던 비극의 콜로세움에 초록빛 생명의 소리가…

바람아님 2013. 11. 9. 20:46
● 카미유 코로의 '파르네세 정원에서 바라본 콜로세움'

스물여섯에 붓 잡은 늦깎이 화가, 스물아홉에 파리서 로마로 유학
그를 매료시킨 건 명작 아닌 자연 … 기록하지 않고 감성을 화폭에 담아
모네 "그와 비교하면 우린 아무 것도…"


 

1825년 유난히도 화창한 어느 날,파리의 한 젊은이가 로마를 찾았다. 귀티 나는 얼굴과 말쑥하게 차려입은 태로 보아 부유한 집

자제임이 분명했다. 이제 갓 스물아홉인 그의 얼굴엔 젊은이답지 않은 안정감과 온화한 기풍이 넘쳐흘렀다. 그것은 자신의

천직을 발견하고 순탄하게 그 길을 걷게 된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일종의 여유만만함이었다.

화가지망생인 그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이었다. 부모의 말을 거역할 줄 모르는 이 순둥이 청년은 고교 졸업

후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업인 직물판매 일을 배웠지만 그건 자신의 적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벼르고 벼르다 청천벽력을

각오하고 화가가 되겠다는 속내를 밝힌 건 스물여섯이나 되어서였다. 남들은 벌써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살롱에 출품할 나이에

겨우 제 갈 길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뜻밖에도 부모는 OK 사인을 보냈다.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여성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달아나는 아들이 밀고 당기는 흥정의

게임 판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부모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청년은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평생 돈 걱정 안하며 그림만 그릴 수 있었다. 19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풍경화가인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이야기다.

 

코로는 이탈리아 유학 출신의 풍경화가에게 그림을 배운 뒤 그 시절 프랑스 화가들이 다

그랬듯이 미술학교에서 기본기를 다지고 로마 유학길에 오른다. '로마 물'을 먹어야 일급

화가로 성장할 수 있고 또 대가로 대접받을 수 있던 그 시절 로마행은 형편만 되면 반드시

결행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사진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던 시대에 르네상스의 명품을 보고

미의 정수를 터득하려면 이탈리아로 달려가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코로가 정작 이탈리아에서 발견한 것은 다빈치의 명화도,유서 깊은 역사적 기념물

도 아니었다. 그가 매료된 것은 1년 내내 그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는 태양과 그 정기를 받은

자연의 발랄한 움직임이었다. 언제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파리의 대기에 익숙해 있던

그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자연의 재발견이었다.

3년에 걸친 로마 체류 기간 내내 그는 르네상스 대가들의 명화를 보기 위해 교회당을 서성이기보다 로마의 정원과 근교의

전원을 소요하며 대자연이 발산하는 시각적 · 정서적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자신을 단련했다. 그런 가운데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법과 서정적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그는 화려한 색채로 시각의 향연을 펼치기보다는 시시각각으로 춤추는 햇빛이 만들어내는 색조의 변화를 포착하려 했다. 그래

서일까. 그의 풍경화는 비슷비슷한 계통색들이 한데 어우러져 차분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훗날 인상주의자들이 코로를

자신들의 중요한 스승으로 간주한 것은 이런 빛의 효과에 대한 선구적인 작업 때문이다. 모네가 원색을 병치함으로써 관람자의

눈에서 색채가 섞이도록 한 데 비해 코로는 이를 팔레트에서 직접 섞어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상주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파르네세 정원에서 바라본 콜로세움'은 빛의 효과에 대한 실험정신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파르네세 정원은 교황 바오로 3세의 손자인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이 1550년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에 조성한 여름 별장이다. 개인 저택으로는 처음으로 식물원이 조성돼 유명해

졌다. 게다가 정원에는 파르네세 추기경이 수집한 로마시대 조각상이 즐비해 방문자들을

신화의 세계로 안내했다. 고대 로마 유적지까지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 코로도

즐겨 들렀다.

그는 어느 화창한 날 이곳에서 두 점의 풍경화를 그렸는데 한 점은 로마시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포럼,또 한 점은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콜로세움을 바라보며 그린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콜로세움은 서기 72년 베시파니우스 황제가 세운

원형경기장으로 검투사와 맹수가 황제와 귀족의 무료함을 달래는 제물이 되어 사투를 펼친 곳이었다.

그러나 코로는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단순히 기록의 목적으로 화폭에 담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건축물들을 빛을 받아

미묘한 색조의 유희를 펼치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그림을 보면 상단에는 푸른 하늘이 배치돼 있고,그 아래에는 오렌지톤의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우측과 하단부에는

파르네세 정원의 나무와 식물들이 마치 그것들을 다정하게 끌어안는 듯한 모양으로 배치돼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짙은 녹음

사이로 떨어지는 빛의 손길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짙은 녹음 속에서 잔잔히 빛을 발하는 연둣빛의 밝은 이파리들을 보라.

어둠과 밝음,초록과 녹색이 미풍을 타고 잔잔히 메아리치는 것 같지 않은가.

건물의 색채 표현은 더 놀랍다. 우측과 하단의 녹지와 맞닿은 건물들은 오렌지색이 아니라 오렌지와 녹색의 중간색을 띠고 있다.

카메라 셔터로 찍었다면 건물들은 분명 오렌지 빛을 띠었을 것이다. 그 기계적 이미지는 보는 이에게 다소 차가운 느낌을

안겨주었으리라.화가는 냉철한 객관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의 주관적 인상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차분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으로 감상자를 마음의 안락의자에 앉힌다.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푸근한 매력이다.

'코로와 비교하면 우리(인상주의자)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한 모네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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