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2.28 전봉관 KAIST 인문사회학과 교수)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거참 큰일들 났어. 저렇게 좋은 청년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저렇게들 애를 쓰니."
'취직 운동 백전백패의 노졸' P가 취직을 부탁하자,
'취직 운동 백전백패의 노졸' P가 취직을 부탁하자,
신문사 K사장은 빈자리가 없다며 이렇듯 상투적인 말로 위로한다.
그러곤 도회지에서 월급생활을 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농촌으로 돌아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한다.
농촌에서 문맹 퇴치 운동이나 생활 개선 운동이라도 해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P의 반론은 첫째, 조선 농촌에서는 '손끝이 하얀' 대학이나 전문학교 졸업생들이
이에 대한 P의 반론은 첫째, 조선 농촌에서는 '손끝이 하얀' 대학이나 전문학교 졸업생들이
문맹 퇴치니 생활 개선이니 합네 하고 몰려다니는 것을 반기기는커녕 머릿살을 앓는다는 것,
둘째, 농민이 우매하다든지 문화가 뒤처진 것, 생활이 비참한 것의 근본 원인이 문맹이나 생활 개선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는 것, 셋째, 조선의 지식청년이 모두 그런 인도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뜻밖의 신랄한 비판을 받고 머쓱해진 K사장은 "P군은 사회주의자인가?"라며 논지에서 한참이나 엇나간 질문을 한다.
뜻밖의 신랄한 비판을 받고 머쓱해진 K사장은 "P군은 사회주의자인가?"라며 논지에서 한참이나 엇나간 질문을 한다.
P는 "철저한 사회주의자라면 이렇게 찾아와서 취직 운동도 하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궁지에 몰린 K사장은 '구직꾼 격퇴 수단으로 자룡이 헌 창 쓰듯' 써온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농촌으로 돌아가기가 싫거든 서울서라도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신문이든 잡지든 아니면 회사라도 하나 차려보라는 것.
"그러면 취직 운동 하는 것보담 훨씬 낫잖은가?"라며 '진심'으로 '진지'하게 충고한다.
"좋은 줄이야 압니다만 누가 돈을 댑니까?"
"그거야 성의 있게 하면 자연 돈도 생기는 거지."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P 역시 말을 끊고 일어선다.
인텔리는 해마다 1000여 명씩 쏟아져 나오는데, '부르주아 기관'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것.
P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원인은 너무나 명료했다.
고학력 청년 실업의 현실을 몸서리치게 체험한 P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못한 아들을 인쇄공장에 보낸다.그것이 1934년 '레디메이드 인생'(문학과지성)에서 채만식이 제안한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인 해법이었다.
양질의 일자리는 80여 년 전 채만식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늘 부족했다.
기술혁신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예견된 것도 40여 년 전 일이다.
청년 실업 문제는 어제오늘 야기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준비된 대통령, 준비된 정부에서 내놓는 청년 실업 대책이 '귀농', '창업', '고졸 취업 우대'
같은 것들이다. 채만식이 80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지닌 것인지,
우리의 인식 수준이 80년 전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 것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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