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남정욱 교수 명랑笑說] 팬과 함께 나이드는 왕년의 스타들… 내 불후의 명곡은 '19살에 듣던 그 노래'

바람아님 2015. 3. 8. 12:33

(출처-조선일보 2015.03.07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 겸임교수)

처음 본 밴드 공연이 송골매였다. 
팝(pop)스러운 구창모와 록(rock)스러운 배철수가 동거하는 이상한 조합이었지만 
어쨌거나 당대 최고의 밴드였다. 하긴 뭐가 되었든 어딘가에 열광하고 싶어 안달 난 
중학생에게 그게 뭐 중요한 문제였을까마는.

대중 매체에서는 송골매를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곡으로 널리 알려진 이글스와 엮어 
'한국의 이글스'로 소개하곤 했는데 그 이글스가 독수리가 아니라 인디언 말로 
'우주의 주인'이라는 뜻이란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정작 공연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쭉쭉빵빵'한 여고생 누나들을 힐끔거리느라. 
열심히 살면 우리에게도 저런 날이 올까, 심각하게 중얼거리던 친구 하나는 
몇 년 후 학업을 작파하고 정말 그 길로 갔다. 
'쭉빵'을 넘어 풍만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일러스트
김수철, 김창완 공연도 기억에 남는다. 누나들이 많지 않아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대학 때는 주로 낙원동에 있는 파고다 예술관을 다녔다. 
지금의 홍대가 없던 시절이라 인디 음악이나 메탈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거기 다 모여 
있었다. 뜨기 전의 부활과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전의 김종서를 거기서 처음 봤다. 
부활의 김태원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억이 없다. 
속도에서는 속주 달인 이근형에게 치이고 연주의 진중함에서는 신대철에게 몰리는 
처지였지만 역시 사람은 말년이 좋아야 한다. 
예능이라는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고 엉뚱함과 4차원이 인기 코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역시 세상은 노력보다 재능, 재능보다 운이다. 
김종서는 고음은 소름이 돋을 만큼 위협적이었지만 저음은 불안한 참 재미있는 
보컬리스트였다. 당시 김종서의 장인은 방송국에 지인이 많았다. 
대중음악 하는 사위를 도와주기 위해 방송국을 찾아가 한참 자랑을 했는데 별 반응이 
없어 그냥 나왔단다. 장인이 찾아간 곳은 예능국이 아니라 보도국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공연은 올리비아 뉴턴 존이었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세계 투어를 했는데 공연 중간에 이런 얘기를 했다. 
"제가 예전에 존 트래볼타와 함께 영화에 출연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 영화는 '그리스'라는 영화였고 당시 그녀는 정상의 톱스타, 현재 할리우드 유명 배우인존 트래볼타는 신인 티를 막 벗은 때였다. 요정은 대체 왜 그런 썰렁한 농담을 했을까.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는 좀 슬펐다. 
꽃이 열흘 붉고, 달이 차서 기우는 것은 서글픈 풍경이다. 그게 벌써 17년 전이다. 
사람은 열아홉 살에 듣던 노래를 평생 듣는다고 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유명한 최신 밴드라고 해도 이상하게 공연장까지는 가게 되지 않았다.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 내한 공연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다. 그는 1942년생이다. 
좋아했던 뮤지션들이 다 그 또래인데 하나씩 세상을 뜨는 중이다. 그들이 다 없어지고 
나면 비로소 내 젊은 날도 상징적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다소 만화 같은 상상을 해 본다. 
폴 매카트니 공연은 건강 문제로 한 차례 유찰되었던 터라 더욱 각별하다. 
들릴 리 없겠지만 이렇게 부탁해본다. 폴 선생님, 이번에는 아파도 꼭 오세요. 
노래 안 불러도 돼요. 그냥 무대에 앉아 있다가 가셔도 돼요. 
노래는 팬들이 대신 불러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