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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극적인 타결로 성과낸 남북 고위급 접촉

바람아님 2015. 8. 25. 10:14

 한겨레 2015-8-25

 

[한겨레] 지난 22일 시작된 남북 고위급 접촉이 밤낮없이 사흘째 이어진 끝에 극적인 타결을 이뤘다. 양쪽이 지뢰폭발 유감과 확성기 중단 등 현안 뿐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 합의까지 이뤄낸 것은 평가할 만한 진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지난주말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 고위급 당국자 접촉에서 연 이틀 밤을 새워 논의했고 현재 합의 마무리를 위해 계속 논의중에 있다"고 밝혔다. 회담 상황이 전혀 공개되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이 '합의 마무리'라는 표현을 써 상당한 진전을 예고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 대표단은 23일 오후 3시30분에 2차 접촉을 시작한 뒤 쉼없이 24일까지 논의를 계속했다. 회담을 먼저 깨뜨렸다는 비난을 피해야 하는 양쪽 처지를 고려하더라도, 타결에 대한 전망이 없다면 나타나기 어려운 회담 양상이었던 셈이다.

가장 어려운 사안은 역시 지뢰폭발사건 등 도발에 대한 북쪽의 책임있는 태도와 남쪽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 문제였다. 박 대통령은 24일 "매번 반복돼온 도발과 불안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북쪽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쪽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확성기 방송 중지 문제에 대한 전제조건을 다시 강조했던 것은 지뢰 사건과 포격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주장해온 북쪽이 막판까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때문으로 보인다. 회담이 타결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북쪽 태도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남쪽도 이를 계기로 남북 관계 전반을 놓고 앞으로도 유연하게 북쪽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안에서도 어렵사리 공감대를 마련했다.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재개 문제를 우선적으로 제기하고, 북쪽은 대북 전단 살포 억제와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폭넓게 얘기했을 것이다. 이들 사안은 서로 주고받는 식으로 타협이 가능한 것들이어서 결국 여러 가지 형태로 조합해 양쪽이 주고받은 셈이다. 이번에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추석 무렵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기로 한 것은 커다란 성과다. 이제는 회담을 정례화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지금의 '2+2 회담' 외에 다른 틀도 검토할 만하다.

이번 회담이 결렬됐더라면 한반도의 긴장도 가라앉기가 쉽지 않았을 뻔했다. 남북이 당국자회담 개최를 통해 다시 머리를 맞댈 기회를 잡은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 민간교류 활성화 합의도 중요하다. 남북은 당장의 현안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 전체를 염두에 두고 대승적 결단을 내려 앞으로 정상회담까지 추진하는 방향으로 적극 대화에 나서기 바란다.

 

[이철호의 시시각각] 박근혜의 초강수에 당황한 김정은

[중앙일보] 입력 2015.08.25

이철호/논설실장

 

박근혜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의 대북 초강수에 세 번이나 놀랐다. 첫째, 군복 차림으로 3군사령부에서 “정치적 고려 없이 대응하되 선 조치-후 보고하라”고 했다. 전면전까지 각오한 군 통수권자의 극약처방이다. 둘째, 목함지뢰 도발에 대북 확성기를 튼 점도 놀랍다. 일부에선 "입(확성기)으로 보복하냐”고 했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2010년 5월 27일 당시 정정길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적이 있다. MB가 천안함 보복으로 대북 확성기를 설치한 직후였다. 그런데 정 실장은 "확성기를 틀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그제 북한 중부전선사령관이 ‘확성기 조준 격파’ 성명을 냈다. 김정일이 관장하는 공화국·국방위 성명이었다면 신경 안 쓰고 틀었다. 문제는 중부사령관은 쏜다면 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안 쏘면 김정일에게 숙청될 판이니 이판사판 덤빌 수 있다.” 확성기는 흐지부지됐다. 그 예민한 대북 확성기를 박근혜는 바로 틀었다. 단번에 북의 심장을 찌르는 강심장이다.

 셋째, K9 자주포의 반격도 놀라운 일이다. 북한은 김정은을 ‘포병술의 천재’라고 했다. 포병 과정을 최우등 졸업했고, ‘GPS를 이용한 포격’ 논문도 썼다고 자랑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에게 연평도 포격은 끔찍한 트라우마다. 포병으로 복무한 장병들은 인공위성 사진에 숨은 진실을 다 안다.

 위성 사진을 보면 북한은 연평도 군부대에 122mm 방사포를, 76.2mm 평사포는 민간 거주지에 쐈다. 170발 중 90발은 바다에 떨어졌고, 나머지 80여 발 중 20여 발은 불발탄이었다. 또 방사포 탄착군은 150~600m의 엄청난 오차를 냈고, 평사포도 150~340m 오차를 보였다. 고정간첩을 통해 미리 정확한 표적을 획득했을 텐데 형편없는 사격 솜씨다. 이에 비해 13분 뒤 해병대의 K9 자주포 대응포격은 대단했다. 대포병 레이더가 고장나 1차 포격은 무도를 향한 계획사격(미리 정해놓은 좌표 사격), 레이더가 가동된 2차는 개머리진지를 향한 임기표적사격(갑작스러운 목표 사격)이었다. 모두 80발 중 45발의 탄착점이 확인됐다. 여기에 해병대가 위성으론 탄착점 확인이 어려운 DPICM탄(공중 10m에서 폭발하는 확산탄)까지 쏜 점도 감안해야 한다.

 위성사진에는 개머리의 방사포 6문 가운데 2~3개문 앞에 추진장약 연소 흔적인 그으름이 안 보인다. 보복포격으로 무력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50여 발의 추가발사가 저지됐으며, 부근 논밭에 떨어진 탄착군도 거의 편차 없이 100m 원 안에 떨어졌다. 무도진지 막사도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입장을 바꿔 만약 우리가 선공했거나 관측병·무인정찰기의 유도를 받았다면 북한 진지는 가루가 됐을 것이다.

 북한의 포는 사실상 고철덩어리나 다름없었다. 워낙 낡은 데다 지하 갱도의 습기로 포신의 강선이 마모됐거나 녹슨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개머리진지에 오밀조밀한 삼각형 탄착군을 만든 40억원짜리 K9은 북한 포병에겐 소름끼치는 무기다. 이번 DMZ 보복포격에 바로 그 K9이 동원됐다. TOT(Time on Target :발사각을 달리해 동일 표적에 동시에 3~5개 포탄을 떨어뜨림) 사격까지 했다면 더 무시무시했을 것이다. 고무줄 새총을 향해 M16을 자동으로 갈긴 것이나 다름없다. 추가 도발 엄두를 꺾기에 충분하다.

 박근혜의 초강수에 북한 김정은이 당황한 느낌이다. 황병서·김양건까지 협상에 내보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과 중국 전승절을 무시하고 시기부터 잘못 골랐다. 기대했던 남남갈등이나 민심 동요도 없었다. 연평도·목함지뢰 도발은 그 처참한 현장이 영상에 담겨 우리의 대북 감정을 악화시켰을 뿐이다.

 어제 박근혜는 “사과와 재발 방지 없이 확성기 중단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2년 전 개성공단 폐쇄 때도 강공으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남북이 강성 대결로만 치달을 것 같아 꺼림칙한 게 문제다. 박근혜가 대북정책 눈높이를 한껏 끌어올려 놓아 누가 차기 대통령이 돼도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남북 협력과 평화라는 단어가 화석화될지 모르겠다. 대결보다 평화가 중요한데 말이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