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9.12
정여울/문학평론가
피카소는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잠재적으로 같은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에너지를 여러 가지 사소한 일들로 낭비한다. 나는 내 에너지를 단 한 가지, 그림에만 집중한다. 그림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은 포기한다.” 말은 숨 막히게 멋있지만, 그 모든 자잘한 욕망을 포기하기가 어디 쉬운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도, 하는 수 없이 견뎌야 할 일도 많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모든 변명이 ‘내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을 미루는 핑계임도 안다. 피카소처럼 멋들어지게 오직 내가 원하는 일에 집중할 순 없지만,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는 방법’을 알아냈다.
첫째,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한번 해보는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목공을 배우기도 했고, 그림을 배우기도 했는데,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대패질의 기술이나 스케치의 비결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글쓰기’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런 비전 없는 글쓰기에 오래 지쳐 있던 내가 잠시 ‘곁눈질’을 했는데, 그 곁눈질의 순간에도 나도 모르게 ‘목공이나 그림 그리기의 실패 경험을 어떻게 글쓰기에 녹여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단 며칠 만이라도 완전한 휴식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텔레비전도 영화도 보지 말고 정말 쉬는 것이다. 바깥세상을 향한 마음의 안테나를 완전히 꺼 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유혹의 진공상태’에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마치 매직아이처럼 떠오른다. 광고나 미디어가 유혹하는 욕망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셋째, 단 하루라도 수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깡그리 접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대부분 현실적인 걱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안정된 수입 때문에,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무시하곤 한다. 나는 이 걱정의 악순환 속에서 내 안의 진짜 두려움과 만났다. 만약 내가 최선을 다하더라도 꿈을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모든 힘을 다 쏟아부었는데도 좋은 글을 쓰는 데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오랫동안 고민해 보니 그 두려움 또한 ‘지금의 내가 판가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두렵다. 평생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 못할까 봐. 지금까지 간신히 쌓아 올린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버릴까 봐. 하지만 그 공포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을 평생 외면했을 때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젊은이들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그걸 깨닫기 전까지 30년이 넘게 걸렸는 걸. 여러분들은 어리니까 아직 모르는 게 당연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괴테는 말했다. 소망이란 자신 안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라고. 나는 온갖 부끄러운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 안의 잠재력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꺼내 주길 기다려서도, 멀리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려서도 안 된다는 것을. 당신 안에 아직 한 번도 이 세상에 울려 보지 못한 천상의 악보를 꺼내 완벽하게 연주할 사람. 그것은 오직 당신 자신뿐이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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