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1.21 신동흔 기자)
1년 50㎞밖에 이동못했던 유목민, 운송수단인 말·수레바퀴 얻은 후 초원지대 전역서 교역 가능해져
"동유럽서 중국 만리장성까지 유라시아 문명·언어 확장됐다"
말, 바퀴, 언어|데이비드 W 앤서니 지음|에코리브르|832쪽|4만원
한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러시아는 '신동방정책'이라는 슬로건을
한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러시아는 '신동방정책'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거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 유라시아 초원 지역은 언어학적·고고학적으로 어떤 의미였을까.
지금까지 초원의 유목민들은 종종 약탈자로 그려졌다.
세계의 변방으로 밀려난 목축 사회는 문명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자주 묘사됐다.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변명도 못하는 이 고대 초원 사회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정당한가.
미국 하트윅 대학의 인류학과 교수이자 우크라이나·러시아·카자흐스탄에서 광범위한 발굴 조사를
미국 하트윅 대학의 인류학과 교수이자 우크라이나·러시아·카자흐스탄에서 광범위한 발굴 조사를
수행한 베테랑 고고학자인 저자는 인도·유럽 공통조어(共通祖語)를 되짚어 이 지역의 유목 사회가
인도·유럽어 계통 문명의 기원지임을 확인한다.
또 침략과 약탈이 아닌 그들 특유의 '후견인-피후견인' 제도를 통해 언어권을 확대했음을 주장한다.
오늘날 유럽과 근동(近東), 인도 대륙에서 30억 넘는 인구가 사용하는 인도·유럽어 계통의 언어는 흑해-카스피해 인근의
오늘날 유럽과 근동(近東), 인도 대륙에서 30억 넘는 인구가 사용하는 인도·유럽어 계통의 언어는 흑해-카스피해 인근의
초원에서 시작됐다. 언어학자들은 이 조상 언어의 단어를 1500개까지 복원해냈다.
예를 들어, 고대에서 숭배했던 '시우스'는 그리스 신화 속으로 들어와 '제우스'가 됐고, 바퀴(wheel)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고(古)영어, 고노르드어 역시 동일 어근(語根)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다른 부족이나 씨족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농경 사회를 침략할 이유도 없었다.
이들은 다른 부족이나 씨족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농경 사회를 침략할 이유도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청동기 시대의 유목민들은 중국이나 고대 유럽의 농경민보다 더 잘 먹었다.
초원의 목축 경제에는 고기와 우유뿐만 아니라 야생 곡물도 충분했다.
초원을 돌아다녔던 이들은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중시했다.
이것은 중세의 왕과 기사에게까지 적용되는 '후견인-피후견인' 제도의 원형. 저자는 영어 guest(손님)와 host(주인)가
'고스티'라는 공통 어근을 갖고 있으며, ghost(유령) 역시 원래는 방문자나 손님을 의미했다고 주장한다.
초원에서 호의(好意)를 주는 이와 받는 이는 얼마든 바뀔 수 있었다.
초원에서 호의(好意)를 주는 이와 받는 이는 얼마든 바뀔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초지(草地)를 지나가려면,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열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기원전 1500년 무렵 기록된 인도의 성전(聖典) 리그베다도
"자신의 음식을 친구에게 나눠주라… 더 강한 이가 더 필요한 이에게 나눠주도록 하라.
그로 하여금 늘어나는 '길(path)'을 응시하게 하라"고 노래했다.
운송 기술의 발달은 초원에 거대한 혁신을 가져왔다.
운송 기술의 발달은 초원에 거대한 혁신을 가져왔다.
말과 수레가 없을 때 양 떼를 몰아야 했던 유목민들은 1년에 기껏해야 50㎞ 정도를 이동했다.
하지만 말 위에 올라타고 바퀴를 얻게 되자, 유라시아 초원지대 거의 전역을 이동할 수 있게 됐다.
네 바퀴 수레를 타고 초원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기원전 3300년~기원전 3100년 무렵 이 지역의 일상적 풍경이 됐다.
저자는 마치 수사관처럼 말뼈의 치아(齒牙)에 나타난 재갈 마모 흔적을 통해 기마의 기원을 기원전 4000년 이전까지
끌어올리고, 고대의 '쓰레기장'을 뒤져 다양한 교역의 흔적을 찾아낸다.
말과 바퀴를 통해 이동성이 확대되자 인도·유럽어족의 어휘가 퍼져 나갔다.
말과 바퀴를 통해 이동성이 확대되자 인도·유럽어족의 어휘가 퍼져 나갔다.
누군가의 피후견인은 다른 누군가의 후견인이 되는 관계가 차곡차곡 쌓여, 후견인의 언어에 동화되는 과정이 반복됐다.
이로써 서쪽의 동유럽에서 시작해 중국의 만리장성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7000㎞ 길이로 가로지르는 긴 회랑이 완성됐다.
초원은 이제 "대륙의 가장자리에 생겨난 그리스와 근동, 이란, 인도, 중국 문명을 잇는 다리"가 된 것이다.
우리는 유라시 아 초원지대가 갈라진 문명을 다시 잇는 다리로 부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근대 이후 종교와 이념의 장벽에 가로막혔던 길은 철길과 고속도로와 자전거라는 또 다른 '말과 바퀴'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후세의 고고학자들을 위한 또 다른 세부 정보를 쌓아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으로 2010년 미국 고고학회가 주는 '최고의 과학책' 상을 받았다.
'人文,社會科學 > 책·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민주의 흑서] 식민주의의 내적구조를 밝히다 (0) | 2015.11.24 |
---|---|
[김대식의 북스토리] 왜 매일마다 저녁일까 (0) | 2015.11.23 |
아는 척, 있는 척… 당신도 그런가요? (0) | 2015.11.21 |
[김대식의 북스토리] 프로코피우스의 '비밀역사' (0) | 2015.11.20 |
[김대식의 북스토리] 전쟁은 왜 필요한가 (0) | 2015.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