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2.15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창씨개명은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당한 굴욕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이었다.
강제로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해 우리의 정체성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잔인한 의도였다.
다행히 광복과 더불어 1946년 10월 23일 미 군정의 조선 성명 복구령(朝鮮姓名復舊令)으로
우리는 옛 이름을 되찾았으나 이 땅의 많은 동식물 이름에는 여전히 일본 잔재가 남아 있다.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조선 성명 복구령을 내리거나 우리식의 창씨개명을 단행해야 할 것 같다.
다소곳하고 청초한 우리 들꽃을 보며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이름을 부르자니 적이 당황스럽다.
다소곳하고 청초한 우리 들꽃을 보며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이름을 부르자니 적이 당황스럽다.
이런 민망한 이름 중 상당수가 저속한 일본 이름에서 유래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대로 자세히 보면 보랏빛 꽃잎이 예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건만
'큰개불알꽃'이 웬 말인가.
열매가 마치 개의 음낭을 닮았다며 일본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가 붙인 이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봄까치꽃'이란 예쁜 이름이 있건만. 이런 일제 이름들을 바로잡으려 지금 인터넷에서는 우리 풀꽃 창씨개명을 위한
스토리펀딩이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내일부터 국립생태원에서는 아시아 희귀 난에 관한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국제 난 전시회'가 열린다.
스키장 빼곤 딱히 갈 곳이 없는 겨울에 후텁지근한 열대 정글 속 별천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총 500여종의 온갖 진기한 난 중에는 꽃부리가 복주머니처럼 생긴 난들이 있을 텐데, 그걸 보며 제발 마키노가 시킨 대로
'개불알꽃'이라 부르는 추태는 삼가기 바란다. 우리나라 식물학자 고 박만규 교수님이 지어준 '요강꽃'이라는 이름이 훨씬
정겹 다. 전국에 800여 개체밖에 남지 않아 환경부 멸종 위기 1급 식물로 지정된 '광릉요강꽃'도 예쁜 복주머니 모양의
꽃부리를 뽐낸다. 이참에 국립국어원이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개불알꽃'을 캐내고 그 자리에 복스러운 '요강꽃'을 심자.
내친김에 '며느리배꼽'과 '며느리밑씻개'에게도 각각 '사광이풀'과 '사광이아재비'라는 훈훈한 우리 이름을 되돌려주고.
봄까치꽃(큰개불알꽃) | << 게시자가 추가한 이미지 >> |
요강꽃(개불알꽃) | 광릉요강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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