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1.05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강원도 춘천시는 지난 2013년 옛 미군 부대 내 조종사 숙소를 리모델링해 300명 규모의 시립 어린이집
건축을 추진했다. 춘천에 어린이집이 270개가 넘지만 부모들은 8개밖에 되지 않는 국공립 어린이집의
빈틈을 찾기 위해 아우성이다. 아이들을 좀 더 안전하게 맡길 수 있고, 비용도 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 어린이집들과 시의회에서 "어린이집들이 정원 70%밖에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청이 대규모 어린이집을 짓는다면 그동안 정부가 해야 할 보육 사업을 대신해 온 민간 시설들을
존폐 위기로 내몰게 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결국 어린이집 신설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전국 어린이집은 4만3000곳인데, 국공립은 고작 2563곳으로 전체의 6%에 불과하다.
한국의 사회복지시설들은 이렇게 민간 시설에 포위돼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긴 결과다.
이런 방식은 제도 초기에는 정부가 돈을 들이지 않고 쉽게 출발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민간 업계의 영향력이
증대할수록 구멍이 숭숭 뚫릴 수밖에 없다.
치매·중풍 환자들이 이용하는 장기요양보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정책 시행을 앞두고 질 높은 시설보다 얼마나 빨리
민간 시설을 늘릴 수 있느냐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장기 요양 시설 5060여 곳 대부분을 민간 시설이 차지했고,
국공립은 고작 2%(114개)뿐이다.
정부가 뒤늦게 시설이 엉망인 곳을 정비하려고 하자 민간 업자들은 "요양 시설을 무조건 지으라고 재촉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공공성을 찾느냐"며 냉소했다.
이들이 세력화된 힘으로 집단 휴업이라도 하게 되면 정부는 사면초가에 빠지게 된다.
국공립이 전체의 6%밖에 되지 않는 병·의원도 마찬가지다.
민간 병원에 의존하는 의료 체계의 부작용이 점차 커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 때도 병원이 메르스 진앙이 됐는데도 정부는 병원 이름을 제때 공개하지 않아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인지, 민간 병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지 헷갈리게 했다.
결국 정부의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 부딪혔다.
이처럼 세력화된 민간 시설에 포위된 사회복지 체제로는 국민에게 더 나은 복지 혜택을 약속하기 힘들다.
대형 병원들은 매출 증대를 위해 병상을 늘리고,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늘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더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매년 건보료를 올리면서도 건강보험 보장률(총의료비에서 건강보험에서 대주는 비율)은 낮아지는 이런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부 사회복지시설과 병원이 가짜 환자를 만들고, 허위 청구로 부정하게 돈을 챙겨도 정부는
무뎌진 규제의 칼날만 휘두를 뿐 속수무책이다.
앞으로가 문제다.
돈 낼 사람은 줄고 혜택 받을 사람만 많아질 고령화 사회에선 국민의 복지 비용 부담 이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제 과감하게 칼을 뽑을 때가 왔다. 국가정책이 국민의 필요가 아니라 공급자에 의해 좌지우지돼선 안 된다.
민간 시설이 국가 시설보다 질 높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조정해야 한다.
정부는 일정한 시설·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라면 엄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복지 근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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