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무인도도 같이 갈 셰익스피어 vs 방구석에 버려진 헤밍웨이

바람아님 2016. 1. 23. 10:29

(출처-조선일보 2016.01.23 어수웅 기자)

NYT가 인터뷰한 작가 55인, 혐오·필독書 등 은밀한 독서편력
지적이면서도 풍성한 고백들… '巨匠의 리스트' 따라 읽으며 넓고 깊게 思惟하는 기회로

'작가의 책'작가의 책|패멀라 폴 지음|정혜윤 옮김|문학동네|592쪽|2만원

영화 '하워즈 엔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1993)을 받은 영국배우 에마 톰슨은 
'센스 앤드 센서빌러티'로 아카데미 각색상(1996)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작가' 에마 톰슨에게 뉴욕타임스가 물었다.

Q: 당신이 연기한, 문학을 원작으로 한 모든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A: (맨부커상을 받은)'남아있는 나날'을 정말 좋아합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을 루스 프라워자브발라가 진짜 훌륭하게 각색한 덕분에, 
영화와 책 둘 다 잃은 건 하나도 없고 얻은 것만 많았던 작품이죠. 
그런데 이기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센스 앤드 센서빌러티'가 더 앞자리를 차지해야 마땅하지요. 
(케임브리지대 영문과를 나온 에마는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을 5년에 걸쳐 시나리오로 각색했고, 
맏딸 엘리너 역을 직접 연기했다.)

좋아하는 작가만도 매혹적인데, 그가 존경하는 작가와 필독·혐오 리스트에 대한 고백까지 포함된다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아닐까. 
뉴욕타임스에 연재했던 작가 55인의 인터뷰를 묶은 '작가의 책'이 그렇다. 
뉴욕타임스 북리뷰 편집장 패멀라 폴의 질문으로 타오른 이 화려한 책의 불꽃놀이는 단순히 문학만의 범주로 
한정되지 않는다. 
우선 작가의 리스트부터.

댄 브라운, 도나 타트, 리처드 도킨스, 맬컴 글래드웰, 알랭 드 보통, 이사벨 아옌데, 
이창래, 제레드 다이아몬드, 제임스 패터슨, 조너선 프랜즌, 존 그리셤, 조앤 롤링, 
조이스 캐럴 오츠, 줌파 라히리, 할레드 호세이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작가(제임스 패터슨)도 있고, 
돈은 못 벌지만 작가들이 숭배하는 '작가의 작가'(줌파 라히리)도 있다. 
가장 논쟁적인 진화생물학자(리처드 도킨스)부터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일약 유명해진 칼럼니스트(맬컴 글래드웰)도 
이 55인 리스트 안에 포함된다.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무화(無化)되는 경험도 흥미롭다. 
11년 세월 들여 쓴 '황금방울새'로 퓰리처상을 받은 도나 타트는 다음 읽을 책으로 스티븐 킹의 '닥터 슬립(Doctor Sleep)'을 
호명하며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들떠 있었다. 
물론 스티븐 킹이 뉴욕타임스 북리뷰 1면 톱 리뷰로 '황금방울새'를 격찬하기 전의 일이다.

거의 매월 책을 펴내 '소설 공장 공장장'으로 조롱받는 제임스 패터슨이 영화보다 자신의 원작이 늘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자부심 과잉의 대답에 놀라기도 하고, 
재미 1.5세 작가 이창래가 대통령에게 권할 한 권의 책으로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라고 대답하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한다. 
"수사의 힘과 한계뿐만 아니라, 폭정과 배신과 교만한 야심의 위험에 대한 연구서"라는 추천 이유에 한 번 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가장 많은 작가가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픈 작가'로 꼽은 인물 역시 셰익스피어였다. 
이언 매큐언은 "인간 묘사에 대한 일종의 도약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인간의 내적 삶이 우리의 숙고 대상이 되었다"고 했다.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작가 역시 셰익스피어였다.

작가들의 대답에는 마음에 안 든 책, 읽다가 방 저쪽으로 던져버린 책에 관한 실토도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렇게 한 방에 날아간다.

유머에 관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작가 데이비드 세다리스는 실망스럽거나 과대평가된 작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모비딕'을 읽느라 진짜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 나니까 어떤 보상 시스템 없이는 도무지 앞으로 나갈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이 책을 끝낼 때까지는 목욕도 면도도 못 하고 이도 못 닦고 옷도 갈아입을 수 없다는 제약 조건을 고안해냈다. 
결국 '모비딕'보다 더 지독한 냄새를 풍기게 됐지만."

인간은 다른 사람이 뭘 하는지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포털의 실시간 검색 순위나 베스트셀러 목록이 그 한 예일 것이다. 
물론 그 리스트의 효용도 있겠지만, 연예뉴스 검색 순위와 대중 베스트셀러에만 집착하는 자신에게 실망한 적이 있다면, 
이 '특별한 리스트'를 추천한다.

훌륭한 책을 읽는다는 건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이 특별한 작가들의 폭넓은 독서와 재능에 기대어 보다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자 정혜윤이 조너선 새프런 코어의 책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 빗대어 표현한 것처럼, 
'엄청나게 지적이고 믿을 수 없이 풍성한' 독서 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