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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중앙] 나를 위한 연가, 야노 시호

바람아님 2016. 2. 22. 00:45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6.02.21 02:21

나를 위한 연가, 야노 시호

많은 여자가 그녀를 닮고 싶어 한다. 그녀의 삶이 돋보이는 이유는 스스로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야노 시호는 일본 시가 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모델로 데뷔했고, 잡지와 TV 매체 등에서 활약하며 20년 넘게 톱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에서도 활동을 시작해 어느새 많은 여자가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이유는 모델이자 한 사람의 아내이며, 한 아이의 엄마 그리고 한 명의 여성으로서 그녀가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재일 교포 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아내로,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슈퍼스타 사랑이의 엄마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야노 시호’ 자체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을 궁금해한다. 덕분에 한국 활동이 많아지면서 일본과 한국을 오가느라 요즘 부쩍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원하는 모습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귀엽고 발랄한 모습을 원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좀 더 여성스럽고 섹시한 모습을 선호하죠. 저에게 서로 다른 느낌을 요구하니 모델로서는 재미있는 일이에요.”

한 달을 삼 등분해서 그중 3분의 2만큼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일을 하고, 나머지 3분의 1만큼은 개인의 삶을 사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그녀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정에 따라 일과 육아에 들이는 시간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 일이 많을 때는 육아에 쏟는 에너지를 줄이고, 일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육아에 좀 더 신경을 쓰는 식이다.

“여러 가지 일을 모두 잘할 수는 없어요.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속상해할 필요는 없죠. 그러면 스스로가 힘들어질 뿐이에요. 무리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가족에게 도움을 많이 요청하는 편이에요.

제가 일을 할 때에는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봐 주시죠. 아니면 이모들이 봐주시기도 하고요.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만 벗어나도 스트레스를 많이 줄일 수 있어요. 종종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거나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목욕을 해요. 혹은 요가를 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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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어렵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워킹 맘이나 전업주부나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건네니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심플한 대답이다.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시간은?” 질문을 한 사람도 대답을 한 사람도 머쓱했던 것은 그 오묘한 문화의 차이를 서로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말대로 ‘우리가 문제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어떤 점이 어려운지 알 것 같아요. 물론 아이 키우는 엄마가 자유롭기는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남편과 아이가 아직 자고 있을 때 아침 일찍 일어나 요가를 한다든지, 잠시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단둘이 외출을 하거나, 남편 없이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녀는 부지런히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주로 가족이 잠들어 있는 시간 또는 가족이 외출한 동안을 이용하는데, 그럴 때면 가장 자주 하는 일이 요가와 명상이다. “앉은 자세에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돼요. 사람은 보통 지나간 일을 떠올리거나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요. 그런 것들이 다 지워지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상태를 만들어 나를 해방시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호흡에만 집중하면 돼요. 아니면 눈을 감아서 깜깜해진 상태에 집중하든가요.”

그녀는 명상이 필요한 이유를 날씨에 비유해 설명했다.

“구름이 많이 낄 때도 있고, 비가 내릴 때도 있고, 번개가 칠 때도 있고 다양한 날씨가 있잖아요. 그런데 만약 제가 구름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번개 치는 풍경, 비가 내리는 풍경을 모두 볼 수가 있어요. ‘아, 지금 비가 내리고 있구나’ ‘지금은 번개가 치는구나’ 하고요.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망할 수 있게 되죠.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져요. 엄마로서 아이를 돌보거나 모델로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누군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잠깐 시간을 내 명상을 하면서 다시금 저를 찾곤 해요.”

그녀에게 명상은 자기 자신을 비우는 작업이고, 의식의 전환을 시도하는 일이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순간이 얼마나 평온하고 기분 좋은 일인지는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데, 그 순간만큼은 유일하게 ‘내가 아닌 상태’가 된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명쾌한 편이다. 육아를 할 때는 아이에게만 집중하고 촬영할 때는 일 생각만 한다. 옷을 준비한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포토그래퍼가 각각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델로서 필요한 고민에만 몰두한다. 본지와 촬영이 있던 날에도 너덧 시간이 금세 흘러갔을 정도로 일의 진척이 빨랐고 막힘이 없었다. 모두가 그녀의 프로페셔널함에 공감했다.

“오늘은 특히 사진 찍는 분이 잘해주셔서 저는 제 할 일만 할 수 있었어요. 촬영을 하다 잘 안 풀리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으면 저도 같이 고민을 해야 하니까 신경이 좀 분산되죠. 예를 들어 ‘라이트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라는 식으로 제가 개입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좋았어요.”

그녀는 얼마 전 낸 책 『시호』에서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라고 언급했다. 아름다운 옷을 입었을 때의 기쁜 마음,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옷인지를 궁금해하는 마음,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떠올리는 것이야말로 모델로서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또 촬영 현장에서 순발력과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그녀는 패션 화보집은 물론이고 영화와 음악, 다양한 예술 작품을 즐겨 본다고 했다. 여행을 다니며 많은 풍경을 눈에 담고, 다양한 경험을 몸에 익히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고. 특히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 여성들을 눈여겨보는데, 그곳의 옷을 입고 생활하는 여성들로부터도 적지 않은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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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그녀도 잠시 자신이 여자임을 잊고 지내던 때가 있었는데, 바로 아이를 낳고 나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모성 스위치가 최대로 켜져 있던 시기. 모유 수유를 하며 온 신경을 아이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사라지고 없더란다. 그때 “나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라는 남편의 한마디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로 그녀에게 자극이 되었다.

“오로지 엄마이기만 했던 시절이었는데, 남편의 말을 계기로 ‘아, 맞다. 나 여자였지’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어요. 시간이 지나 아이가 성장하면서 저에게도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요. 그 이후로는 늘 여성으로서의 나를 의식하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아내이고 엄마지만 그래도 저는 여자이고 싶어요. 어쩌면 결혼 전 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도 생각해요. 모성애를 가진 여자는 좀 더 멋있고 섹시하지 않을까요? 아이한테도 멋진 엄마로 불리고 싶고, 남편에게도 예쁜 여자이고 싶어요. 그 밖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사람으로 여겨졌으면 좋겠고요. 그러기 위해서 무언가 구체적으로 노력을 한다기보다는, 늘 생각을 해요. ‘나는 나’ ‘나는 여자’라고요.”

그래서 어떤 여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다. “지금 당장은 언어 실력을 키워서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그럼으로써 저의 세계를 더 넓히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늘 생각하는 건데, 제 목표는 몇 살이 되어도 빛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나이 들어가는 것이 무섭다고도 하던데 저는 나이 드는 만큼 더 빛이 나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20대에는 저만을 위해 자유롭게 살다가 지금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또 다른 역할을 경험하고 있고, 엄마이기 때문에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도 생겼어요. 그런 것들이 저를 더 빛나게 해줄 거라고 믿죠.”

마흔 살의 그녀는 이제 나이에 걸맞은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할 수 있다면 저에게 주어진 환경을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주위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조정하려고 해요. 이건 물론 마흔 살의 제 생각이고, 10년 후 쉰 살이 되면 그땐 또 어떻게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어요. 다시 10대, 20대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죠.”

모델로서 엄마로서 의류 사업을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그녀의 삶은 모든 게 다 ‘시호’다. 직접 만나본 그녀는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실제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또한 마음을 채우는 일이었다. 만약 마음 어딘가에 부족하거나 공허한 느낌이 감지된다면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자신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20대 시절 모델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결혼과 출산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그녀는 또 다른 ‘시호’를 꿈꾸기 시작했다. “새로운 만남을 통해 세계를 넓히고 한층 더 높은 차원의 표현력을 갈고 닦는 것”이라는데, 그 이유는 한결같다. 언제나 ‘나’로서 빛나는 존재가 되기 위함이다.



기획_조영재 | 사진_HONG JANG HYUN
여성중앙 2016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