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지평선] 맞춤형 안보리 제재

바람아님 2016. 2. 29. 00:25
한국일보 2016.02.28. 19:14


1965년 11월11일 영국 식민지인 남부 아프리카의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를 지배하던 백인정당 로디지아 전선의 당수 이안 스미스가 전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다수의 흑인이 참여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선택을 원했던 영국과 달리 소수의 백인 지배를 원했던 스미스는 절대 다수인 600여만명의 흑인을 배제한 채 8만여 영국계 백인 유권자만으로 독립 투표를 강행했다. 발끈한 영국은 ‘반역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이듬해 유엔 안보리를 통해 로디지아 경제제재를 이끌어 냈다. 이 제재는 13년 간 지속됐다.


▦ 유엔 안보리 역사상 최초인 로디지아 제재 결의는 유엔군의 한국전쟁 파병과 마찬가지로 소련이 불참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1990년대 이전까지 회원국에 이행 의무를 부과한 안보리 제재 결의는 로디지아를 포함해 두 번밖에 채택되지 않았다. 1977년 인종차별정책과 함께 핵 개발을 추진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무기수출금지, 경제협력 금지 등을 담은 제재 결의안이 또 다른 하나다. 흑인 차별에 대한 징벌을 요구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도했다.


▦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 또는 회복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군사적, 비군사적 조치’를 담은 유엔 헌장 7조의 제재 규정은 미ㆍ소 진영의 대결 과정에서는 사실상 사문화했던 셈이다. 양극 체제가 무너지면서 안보리 제재가 폭증, 수백 건에 달하게 된다. 항공기 폭탄테러(리비아)와 군부 쿠데타(아이티), 내전(소말리아 앙골라 르완다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을 이유로 안보리 제재 결의가 급증한 1990년대는 ‘제재의 10년’으로 불린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핵 개발을 추진한 북한과 이란 제재 결의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 유엔 안보리 제재는 신뢰성, 효율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무고한 일반 국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 2000년대 초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한 이라크 제재가 그랬다.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인도주의적 비판이 일었다. 반면 이번 안보리 대북 제재안에 포함된 석탄수출 금지의 경우 땔감이 부족한 북한 인민의 복지에 오히려 유용할 것이란 분석이 있다. 제재를 당하는 정권이 바보는 아니다. 일반인 피해가 클 경우 정권을 공고히 하는 선전선동에 얼마든지 역이용할 수도 있다. 맞춤형 제재가 필요한 까닭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