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03-11 03:00:00
최영해 국제부장
박봉과 2교대 근무에 지친 직원이 노인학대를 일삼다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사건에 일본 열도는 경악했다. 범인은 평소 자신이 돌보는 노인과 간호 업무에 불만이 많았다. 저녁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수십 명의 입소자를 맡아 기저귀를 갈다 보면 노인과 일에 지친다는 것이다. 월급은 22만 엔(약 238만 원)밖에 안 됐다.
이 요양원에선 예전에도 20∼40대 남자 직원 4명이 80대 여성 입소자에게 ‘죽어라’라고 폭언을 퍼붓고 머리를 때렸다가 입소자의 아들이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찍힌 적이 있다. 안고 있던 노인을 침대에 던지는가 하면 혼자 목욕하던 80대 남성이 실신한 채 발견된 적도 있었다.
영세한 구멍가게가 아니라 종업원 1만7872명을 거느린 큰 기업이 이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메시지’라는 이 대기업은 요양원을 281개나 운영하며 연매출 790억 엔(약 8532억 원)을 올리는 자스닥(JASDAQ·한국의 코스닥) 상장기업이다. 범행이 저질러진 ‘S아뮤 가와사키 사이와이초’에선 식대를 포함해 임대료 및 관리비로 한 달에 22만1700엔(약 239만 원)을 받았다. 여윳돈이 있는 중산층 노인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본에선 지금 고도 성장기에 수도권으로 몰려든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65세 이상이 3404만 명으로 전체의 27%나 된다. 1955년부터 1970년 사이 지방인구 800만 명이 대도시로 몰려들었고 이 가운데 400만 명이 도쿄로 유입됐다. 이들의 평균 나이가 지금 75세쯤 된다. 일본의 싱크탱크인 ‘일본창성회의’는 노인복지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도쿄 시 거주 노인 100만 명을 지방으로 보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가 노인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보다 더 핵가족화돼 있는 일본은 부모를 한번 요양원에 모시면 찾아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5월 광주에서 한 70대 노부부가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할아버지는 거실에서 발이 끈에 묶인 채 목이 졸린 흔적이 보였고 할머니는 작은방에서 구토한 채 숨져 있었다. 집 한편엔 요양원 입소를 위해 꾸려놓은 짐이 한가득 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병든 남편을 수발해온 할머니가 지병이 악화되고 우울증이 심해져 가족들에게 “더이상 병간호를 못하겠다. 나도 약 먹고 죽고 싶다”고 푸념했다고 한다. 요양원 입소를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다. 고령화사회의 짙은 그늘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지인이나 친인척 중 요양원에 가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치매에 걸려 가족들이 보살피지 못하는 가정도 있고, 자식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느라 부모를 요양원에 모시기도 한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심심찮게 보도되지만 요양원 노인폭행 사건은 좀체 언론에 나오지도 않는다. 사회적 감시의 사각지대가 아닌지 궁금하다.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시설이 아무리 훌륭해도 따뜻한 가족 품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죽음의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을 연상시킨다. 머나먼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아 더욱 섬뜩하다.
최영해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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