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남역에서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 일어났다. 그 일로 많은 여성들이 울분과 충격에 빠졌고, 또 많은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을 불편해 했다. 하지만 소수의 남성들은 왜 벌어졌는지 반추하며 여성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글을 쓰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그동안 여성들이 사회에서 당했던 차별과 폭력이 너무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몰랐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변화의 시작일지 모른다. 그 사건과 직접 연관이 없더라도 이 사회에서 벌어졌기에 왜? 무엇 때문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눈감고, 입 다물어야 했던 폭력들이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해해선 안 될 것은 충격에 빠진 여성 모두가 이 사건을 빌미로 모든 남성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계속,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나 또한 여성이기에 그 사건을 듣고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았다. 그래서 뉴스를 들은 다음날,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마을에 귀신들린 여자아이와 박수무당이 나오는 영화를 봤다. 아주 나쁜 기분일 때, 맑은 하늘을 보며 호수를 치고 날아오르는 물오리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나아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내면을 파헤치고 폭력의 저변을 상징하고 은유하는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더러운 기름때는 깨끗한 물에는 지워지지 않기에 석유로 빨아야 하는 때도 있는 것이다.
유형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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