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6.17 김기철 문화부장)
![김기철 문화부장 사진](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6/16/2016061603308_0.jpg)
요약된 6·25전쟁을, 어젯밤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린 선명한 기억력에 감탄했다.
내친김에 같은 연배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이 비슷한 때에 낸 '서울, 해방공간의 풍물지'도 읽었다.
함경남도 갑산 출신 소녀가 피란민 신분으로 해방과 6·25 무렵 서울에서 겪은 체험기였다.
지난해 1400만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 '국제시장'의 지식인 버전이라고나 할까.
열다섯 소년 유종호가 6·25를 맞은 건 고향인 충주에서였다.
열다섯 소년 유종호가 6·25를 맞은 건 고향인 충주에서였다.
인민군이 점령한 읍내 집과 근처 시골을 피란차 오가던 그의 눈에 기이한 장면이 들어왔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허름하게 하향평준화된 것.
김성칠의 6·25 일기 '역사 앞에서'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서울대 사학과 교수였던 김성칠이 한강 다리를 건너지 못해 인공(人共) 치하에 남았다가 목격한 장면이다.
'신사복에 중절모 갖춰 쓴 것이 나 혼자뿐이고, 모두들 허름한 노동복 쓰봉에 윗도리는 샤쓰 바람이고 머리는 한결같이
탈모가 아니면 보릿짚 모자이다.'
주인 바뀐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호신술이었다.
유 교수의 회상은 부역자 처리 문제에서 폭발한다. 제때 피란 못 간 죄(罪)로 교사였던 아버지가 겪었던 고초 때문이다.
유 교수의 회상은 부역자 처리 문제에서 폭발한다. 제때 피란 못 간 죄(罪)로 교사였던 아버지가 겪었던 고초 때문이다.
수복 후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남하했다가 돌아온 한 교사가 벌떡 일어나 일갈했단다.
"그까짓 석 달을 못 참아 부역을 한단 말이오? 3년도 아니고 겨우 석 달을?"
그의 호령에 '반역죄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 버렸다. 소년은 항변한다.
적(敵) 치하에서 겨우 살아남은 동료들을 향해 던질 말은 아니었다고. 그러나 부역자를 바라보는 이승만 정부의 태도는
이 교사와 비슷했다. 우파(右派) 지식인으로 꼽히는 유 교수는 정부가 국민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해 사과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소수 극렬파를 제외한 부역자에게 사면령을 내렸어야 한다고 말한다.
강인숙 관장의 회고는 '우리의 10대는 비상시(非常時)의 연속이었다'로 시작한다.
강인숙 관장의 회고는 '우리의 10대는 비상시(非常時)의 연속이었다'로 시작한다.
2차 대전과 해방, 6·25를 모두 10대에 겪었으니, 그럴 만하다.
1945년 11월 열세 살 소녀가 기차 지붕에 올라 '졸면 떨어져 죽는' 남행(南行)길을 떠나고, 한탄강 철교를 혼자 힘으로
넘는 영화 같은 얘기가 펼쳐진다. 그때 덮었던 포도 무늬 누비이불이 피란살이 5년을 거쳐 6·25와 1·4 후퇴 때 다시 가족을
보호해주면서 누더기로 변해 '실성한 여자 같은 몰골'이 됐다. '그런 이불의 모양새는 그대로 우리 가족의 모양새였다.
뿌리가 뽑혀 겨우 새 땅에 뿌리를 내리려 버둥대는데 다시 새 전쟁이 터져서 5년 만에 기차 꼭대기 신세가 된 피란민
가족….' 추상에 빠지기 쉬운 전쟁의 실상을 소소한 장면으로 구체화했다.
유종호 교수는 말한다.
자기 세대가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이나 이런 자기 연민을 넘어서야 한다고.
팔순을 넘긴 두 인생 선배의 회상록은 세대 간의 자기 연민을 뛰어넘어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과거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섣부른 편 가르기부터 하려는 현대사 연구자들보다 몇 갑절 훌륭한 기억의 전사(戰士)들에게
경의를 바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저자 박완서/ 세계사/ 2012/ 301 p 813.608-ㅂ398ㅂ-19=3/ [정독]어문학족보실(2동1층) 그 겨울 그리고 가을 : 나의 1951년 유종호 지음/ 현대문학/ 2009/ 353 p 818-ㅇ596ㄱ/ [양천]책누리실서고(직원문의)(2층) 회상기_나의 1950년 : 유종호 에세이 유종호/ 현대문학/ 2016/ 358 p 814.6-ㅇ596ㅎ/ [정독]어문학족보실(새로들어온책) 서울, 해방공간의 풍물지_ 열세 살 소녀가 월남해서 처음 만난 서울사람, 서울문화 이야기 강인숙/ 박하 쌤앤파커스/ 2016/ 296 p 911.6-ㄱ257ㅅ/ [정독]인사자실(새로들어온책) 정치권력과 역사왜곡_ 제주 4.3 사건진상조사보고서 비판 현길언/ 태학사/ 2016/ 558 p 911.072-ㅎ529ㅈ/ [종로]인문사회과학실 어느 인문학자의 6·25 강인숙 지음|에피파니|376쪽|1만8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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