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을 방조한 유럽인 풍자와 反轉

(출처-조선일보 2016.06.11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옅푸른색 잉크로 쓴 여자 글씨｜프란츠 베르펠 지음

윤선아 옮김｜강 출판사｜232쪽｜1만4000원

체코 출신 시인·소설가 프란츠 베르펠이 194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나치 독일의 전체주의를 방조한 유럽 사회의 죄의식을 담았다. 

주인공 레오니다스는 독일 제국의 일원이 된 오스트리아의 고위 관료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대학생 시절에 우연히 얻은 연미복 덕분에 출세 가도를 달렸다. 

유대인 친구가 자살하면서 연미복을 물려준다고 유언한 것. 

잘생긴 레오니다스는 연미복을 입고 나간 무도회에서 스타가 되어 부잣집 딸을 아내로 얻고 

관직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는 쉰 살 생일을 맞은 뒤 위기에 빠졌다. 

생일 축하 편지 더미 속에서 옅푸른색 잉크로 쓴 여자 글씨체의 편지가 발견된 것. 

18년 전 잠시 사랑을 나눴던 여성이 보낸 편지였다. 

느닷없이 '도피할 곳이 없는 똑똑한 유대인 청년을 도와달라'고 청탁한 것.

레오니다스는 그 청년이 그녀와 짧게 연애한 시절에 얻은 아들이라고 짐작했다. 

이로부터 소설은 심약하고 위선적인 레오니다스가 유대인 청년 때문에 고민하는 과정을 우스꽝스럽게 전개한다. 

삼인칭시점 소설이지만, 때때로 주인공이  법정 진술 형식으로 과거를 변명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그런 개인의 변명을 깊이 파고들면서 사회적 차원의 의미를 지적한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에 동조한 오스트리아 사회의 위선을 냉소적으로 까발리는 것. 

전체주의의 폭력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집단의 변명을 들어주면서 역설적으로 비판하는 소설이다. 

마지막엔 모파상의 단편을 연상케 하는 반전(反轉)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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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하나 사이로 안전·범죄 지역 나뉘는 美"

(출처-조선닷컴 2016.06.11 김성현 기자)

‘도시로 보는 미국사’를 펴낸 

박진빈 경희대 교수. /고운호 객원기자

'도시로 보는…' 쓴 박진빈 교수

박진빈(45)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미국 도시의 형성과 발전, 변화 과정을 전공한 

서양사학자다. 

그는 1998년 미 펜실베이니아대로 유학을 

떠났을 당시, 학교 캠퍼스를 안내해주던 

미국인 선배가 첫날 들려준 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미국에서는 해질 무렵에 백인 여성이

조깅하고 있는 지역은 안전하다고 생각해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위험하다고 간주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었다.

인종적·계층적 갈등이 심각하고 총기 사고가 

빈번한 미국 도심에서는 불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범 지역과 안전 지역이 

나뉘는 일이 허다했다. 

흑인 문화의 탄생지로 꼽히는 뉴욕 할렘이나 

부촌(富村)의 대명사인 로스앤젤레스의 

베벌리힐스처럼 인종과 계층에 따라서 

거주 지역이 구분되는 현상도 뚜렷했다. 

이런 궁금증은 미 유학 시절 내내 박 교수에게 학문적 화두(話頭)가 됐다.

그가 최근 펴낸 '도시로 보는 미국사'(책세상)는 유학 시절 품었던 의문에 대한 '자답(自答)' 같은 책이다. 

이 책에서 박 교수는 미국을 대표하는 8개의 도시와 그 도시의 사회적 쟁점을 짝지어 살피는 방식을 택했다. 

시카고는 흑백 인종 갈등, 세인트루이스는 공공 임대 주택과 도심 재개발, 애틀랜타는 교외(郊外) 대형 쇼핑몰, 

로스앤젤레스는 다인종 사회라는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책에는 도심 개발로 인한 임차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과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주택가의) 고급 주택화)'처럼 한국에서도 민감한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이 적지 않다. 

박 교수는 "미국 뉴욕의 경우 1970년대부터 도심 재개발과 공간 개선 

사업으로 땅값과 임차료가 치솟으면서 이민자와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뮤지컬 '렌트'의 무대가 됐던 뉴욕 남동쪽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

(Lower East Side)에 이어 최근에는 할렘까지 젠트리피케이션은 확산되고 있다.

박 교수는 "도심의 공동화(空洞化)와 슬럼화 현상을 막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효과도 있지만, 저소득층이 쫓겨나고 문화적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부작용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각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주택가의) 고급 주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