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선우정 칼럼] 우리 시대의 '개돼지'들

바람아님 2016. 8. 3. 07:22

(출처-조선일보 2016.08.03  선우정 논설위원)

권력에 빌붙는 者, 外勢에 굽실대는 者, 탐욕·음탕한 者, 의리를 버린 者…
역사가는 말한다 "그들이 개돼지"라고

선우정 논설위원한 공무원 때문에 '개돼지'란 말이 오남용되고 있다. 
옛 사관(史官)들에게 '개돼지'는 그렇게 값어치 없는 말이 아니었다. 
개 구(狗), 돼지 체(彘). 민중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권력자들을 향해 "구체"라고 손가락질했다. 
"개돼지 같다(有同狗彘)"고 했다. 
극단적 탐욕에 대해선 "개돼지만도 못하다(不如狗彘)"고 했다. 
당대엔 왕에게 직접 호소했고, 후대엔 실록에 그대로 기록했다.

조선의 사관은 최고 교양인이었다. 
그런 이들이 쓴 조선왕조실록의 문장이 이렇게 험한 줄 몰랐다. 
조선 중기 고위 관료를 지낸 고맹영(高孟英)에 대한 평가를 읽으면 섬뜩하다. 이름 석 자가 나올 때마다 날을 세운다. 
"개돼지만도 못하다"는 혹평에도 성이 안 찼는지 "쥐와 여우 같은 존재" "구미호"라고 했다. 
홍문관 부제학까지 지낸 사대부를 향해 왜 이런 극언을 서슴지 않았을까.

권력에 붙어 나라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다. "노예처럼 권력자를 섬겨 요로(要路)에 기반을 잡았다"고 했다. 
고맹영이 요직에 오르자 "식자(識者)들이 침을 뱉었다"고 혹평했다. 
같은 권력자에게 줄을 댄 문신 이감(李戡)도 '개돼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으면서도 권력자는 상전처럼 섬겼다"고 했다. 
같은 계파의 이령(李翎)은 "법관 때 음란한 짓을 행하고 외교 사절로 나가 욕심을 채웠다"는 이유로 '개돼지' 대열에 합류했다.
문신 이의(李艤)에 대해선 "권력에 벼룩처럼 달라붙어 재상까지 마구 깔아뭉갰다"는 이유를 들어 역시 '개돼지'로 분류했다.

내부 권력만이 아니다. 바깥 권력에 빌붙는 사람도 사관 눈엔 '개돼지'였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중국은 하늘 같은 나라였다. 
하지만 중국에 빌붙은 조선인 통역관을 "저잣거리에서 이익을 꾀하는 개돼지만도 못한 자"라고 기록했다. 
"나라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이롭게 하기만 힘쓰며 조금이라도 뜻에 안 맞는 일이 있으면 
몰래 중국 사람에게 부탁해 제 분을 푼다"고 했다. 중국과 반대로 당시 일본은 원수 나라였다. 
이런 나라에 국가 대표로 가서 '적정을 탐색하고 의(義)를 지키지 못한' 외교관도 짐승 대접을 받았다. 
"서계(일본과의 외교 문서)는 거칠었는데도 고치지 못했고 백금(白金)은 명분이 없는데도 물리치지 못하고 
머리를 숙여 받아옴으로써 개돼지 같은 모욕을 당했다." 체면을 지키지 못한 죗값이었다.

실록에서 첫 '개돼지' 타이틀을 얻은 인물은 조선 초 무관 유은지(柳殷之)다. 
물려받은 권력과 금력으로 음행을 일삼다 일가(一家)가 탄핵당하고 역사의 낙인까지 찍혔다. 
"행실이 개돼지 같은 일가가 윤리를 멸망시켰다"는 혹평을 받았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문신 오도일(吳道一)이 '사람 짐승'으로 찍힌 건 말년의 음행 탓이다. 
"취하면 문득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됐고 기생들도 발가벗겨 쫓아다니며 희롱하다가 '사람 짐승' 소리를 들었다"고 
낱낱이 기록했다. 사관들은 재산을 탐했다는 이유로 또 한 번 그를 때린다. 
부(富)를 탐해 '개돼지 같은' 종친과 사돈을 맺었다는 것이다. 
"같은 당파조차 더럽게 여겼다"고 했다.

의리를 버린 사대부도 '개돼지'로 불렸다. 
조선 중기의 문신 송질(宋軼)은 연산군 치하에서 판서에 올랐으나 등을 돌려 반정(反正) 공신이 됐다. 
"임금을 배반한 죄로 논하면 먼저 참(斬)해야 마땅한데 뻔뻔스레 하늘을 속이는 죄를 짓고 있다." 
사관은 그를 향해 "자못 개돼지만 한 부끄러움도 없다(殊無犬豕之恥矣)"고 했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통틀어 이들만큼 의리를 버려 '개돼지'가 된 인물이 없다. 
이완용·박제순 등 을사오적이다. 
구한말 언론인 장지연(張志淵)은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에서 이들을 "개돼지만도 못한(豚犬不若) 신하"라고 했다.

역사와 언론의 신랄한 비판에도 권력의 품 안에서 일생 편히 살다 가는 '개돼지'도 있다. 
실록엔 이에 대한 사관의 무력감과 탄식도 담겨 있다. 
"상(임금)이 깨닫지 못하고 이들을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니 흙더미가 무너지는 위태한 형세를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임금을 탓하지 않는다. 
"아, 간쟁하는 신하 중 원수처럼 악을 미워하며 매가 참새를 쫓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임금에게 대든 자가 있었던가."

실록을 만든  조선 역사가의 눈에 오늘은 어떻게 비칠까. 
권력과 금력에 빌붙는 자, 탐욕과 이익에 눈이 먼 자, 음행에 몰두하고 의리를 저버리는 자…. 
실록을 읽으면 연상되는 얼굴이 적지 않다. 
권력을 앞세워 여론에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세태도 비슷하다. 
조선의 역사가라면 이렇게 근심하지 않을까. 
이러다 다시 을사오적 같은 '개돼지'가 나타나 나라를 말아먹을지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