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플러스]
입력 2016.08.28 19:12
별로 문학적이지 못했던 대학시절, 인상깊게 읽었던 시가 한편있다.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싶다.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싶다.'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한 시다. 그런데 당시에도, 지금도 '외눈박이'란 표현에 더 눈길이 간다. 외눈으로 오직 한쪽만을 바라보는 상상속의 물고기 '비목'.
현실에선 아마도 눈이 한쪽으로 쏠려있는 광어나 도다리 같은 물고기가 해당될 듯 하다. 당시에도, 지금도 우리 사회엔 비목이 많은 것 같다. 온통 외눈박이 물고기 세상이다. 오로지 자신이 보고싶은 곳, 보고싶은 것만 보는 그런 이들 말이다. 보수는 오른쪽으로, 진보는 왼쪽으로 눈이 향해 있다. 그래서 반대 진영은 애써 보지 않는다. 들으려 하지 않고 보려 하지 않으니 그 접점을 찾을 수가 없다. 역사교과서부터 사드 배치 논란까지 좌우를 두루 아우르는 시선이나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외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주요 포털의 댓글에서 중립적 입장은 사라진지 오래다. 어쩌다 그런 주장이나 댓글이 등장하면 좌우 양 진영으로 부터 난타당하기 십상이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진 언론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은 극단적일 만큼 갈린다. 원인으로 꼽은 내용 역시 상반된다. 하지만 이렇게 가서는 극한 충돌과 혼란 밖에는 기다리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다니는’ 노력만이 해법이다. 보수의 시선도, 진보의 시각도 두루 갖추고 바라보려는 노력말이다. 진실은 결코 양 극단에 있지 않다. 해법 역시 어느 한쪽 편의 전유물이 아니다. 조금만 더 상대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을 요구한다면 너무 무리일까. 이미 너무 갈라져 있는 건 아닐까. 외눈박이 물고기가 마구 판치는 세상은 아니어야 할텐데 말이다.
강갑생 피플&이슈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