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피첩>이 무엇인가. 1810년 다산의 부인 홍씨가 전남 강진에서 10년째 유배생활 중이던 남편에게 다홍치마를 보낸다. 시집올 때 입고 온 혼인 예복을 ‘날 잊지 말아달라’는 의미로 보낸 것이리라. 부인의 마음을 몰라줬던 것일까. 다산에게 ‘빛바랜 다홍치마’는 글을 쓰기에 안성맞춤인 서본(書本)으로 보였다. 다산은 이 치마를 재단해서 두 아들(학연·학유)에게 가르침의 편지 4책을 만들어 보냈다.
그러면서 붉은 치마의 다른 말인 <하피첩>이라 명명했다. 이 중 3책이 200년 만에 현현한 것이다. 책은 TV 공개 후에도 우여곡절을 겪은 뒤 지난해 9월 경매에서 7억5000만원에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낙찰됐다. <하피첩>은 폐족(廢族·망한 가문)의 자제들이 어찌 살아야 할지를 조목조목 가르치고 타이르고 있다. “재물은 잡을수록 빠져나가는 메기와 같다” “공경의 마음을 세우고, 의리를 반듯하게 만들라(敬直義方)”는 등의 구절이 눈에 특히 띈다. <하피첩>이 아니더라도 다산이 두 아들에게 전한 편지글들은 ‘18년 기러기 아빠’의 가르침을 모두 담고 있다. 아비 없는 가문의 자식을 향한 호된 꾸지람도 서슴지 않는다.
예컨대 “제발 공부 좀 하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대체 뭐냐. 한심하구나. 네 형(학연)이 이 지경인데 동생(학유)은 오죽하겠냐.” “네가 의술을 펼친다고?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평생 너를 보지 않을 거다.”
심지어 아들(학유)의 술버릇을 두고 “어찌 글공부는 아비를 따라하지 않고 주량만 아비를 넘어서는 것이냐”고 질타한다. 다산은 이어 “왕년에 술 하면 아비를 이길 자 없었지만 결코 반 잔 이상을 마셔본 적이 없다”고 ‘왕년에~’ 타령을 한다. ‘무관심한 가장이 최고’라는 요즘의 기준이라면 ‘빵점 아버지’이자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자. 가장으로서 18년 귀양살이의 미안함과 애틋함을 때로는 꾸짖음의 형태로, 혹은 안타까움의 방식으로 표출한 것이 아닐까.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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