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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최순실 악용하는 중국, 반박도 못하는 한국

바람아님 2016. 11. 16. 23:37
[중앙일보] 입력 2016.11.16 01:00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구이미(閨蜜·친한 여자 친구) 게이트’ 수렁에 빠진 박근혜 정부가 외부의 우발적 사건을 찾아 국내 모순을 환기시킬 분화구로 삼고 있다.”

민족주의 성향의 중국 환구시보가 15일자 칼럼에서 한국 해경의 정당한 법 집행을 최순실 게이트 탓으로 돌렸다. 비잉다(畢潁達) 산둥(山東)대 한·중관계연구센터 연구원은 “강경 입장을 취해야 박근혜 정부의 ‘구이미 게이트’를 전가하는 총알받이를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국 어민의 불법 행위는 눈감은 채 한국 해경이 습관적으로 무기를 들어 중국 어민이 숨지는 참극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중 민족주의 대립 정서에 불을 붙여 양국 관계의 근본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교묘하게 민족 감정을 자극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한국 외교 전면 재조정되나?’라는 인민일보 해외판 톱기사.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한국 외교 전면 재조정되나?’라는 인민일보 해외판 톱기사.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은 한발 더 나아갔다. 최순실 게이트를 빌미로 한국 외교의 전면 재조정을 ‘압박’했다. 정지융(鄭繼永) 푸단(復旦)대 한국센터주임교수는 “한국 국회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군 위안부 문제 등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에 최순실이 어디까지 개입했나 조사 중”이라며 “외교부는 동기가 불순한 정책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손을 놓은 채 관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외교부 관리를 인용해 “향후 정부가 어떤 정책을 발표해도 그 취지와 입안 과정에 의혹이 제기될 것”이라며 “대북 압박 정책도 엄중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루중웨이(陸忠偉) 전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원장을 인용해 “만일 사드 배치가 청와대 밀실에서 결정됐고 미 방위산업체 로비와 관련됐다면 박근혜의 정치 생명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사드 배치는 보류될 것”이라고 단정했다.

중국 국가안전부 부부장에서 지난해 낙마한 루중웨이 전 원장은 상하이 문회보의 13일자 칼럼에서 “한국은 ‘국제적 치욕’을 입었으며 국제 질서의 격변기에 ‘잃어버린 10년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만일 청와대 주인이 이번 게이트로 바뀌면 한국 외교는 전면 리셋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중국 관영지의 억지 주장에도 한국 외교는 유구무언이다. 지난해 9월 천안문 망루 외교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경제·안보 분야에서 구두선(口頭禪)만 외쳤다. 베이징 교민사회는 “살점을 떼줬더니 떡 한 점 던져주는 식”이었다고 평가한다. 청와대 바라기로 일관한 현 외교 수뇌부가 불러온 업보다. 식물 대통령으로는 ‘핵심’ 칭호까지 더한 시진핑(習近平)의 중국을 상대할 수 없다. 외치의 리더십 복구가 시급하다. 우물쭈물할 시간마저 이미 사치다.

신 경 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