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22 선우정 논설위원)
일흔 넘은 할아버지가 삼시 세끼를 집에서 드신다.
부아가 돋은 할머니가 "경로당 가서 점심도 하고 친구와 어울리라"고 하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싫으냐"는 물음에 할아버지의 대답. "경로당 가면 형들이 심부름시켜!" 작년 라디오에서 이런 사연을 들었다.
웃자고 소개한 이야기지만 고령 사회의 단면이 반영돼 있다.
정부의 노인 실태 조사를 보면 우리 어르신들이 스스로 노인으로 여기는 나이는 일흔 즈음이다.
일흔 중반을 넘겨야 '형들 눈치 안 보고' 경로당을 드나든다고 한다.
사실 요즘 60대를 노인이라고 부르면 누구든 받아들이지 않은 것같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의 법적 기준은 만 예순다섯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 나이부터 고령자로 삼는다.
국제 기준엔 맞지만 고령 사회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기준을 올리면 될 듯한데 간단치 않다.
기초연금, 경로우대처럼 고령자 혜택이 시작되는 시점이 늦춰지는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 받는 나이도 따라 올라갈 수 있다. 4년 전 실제로 정부가 노인 연령 기준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중장기 대책'으로 내놓았다가 혼이 났다. "국가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 단체도 있었다.
▶소폭이지만 노인 기준을 올리는 데 성공한 나라는 미국이다.
벌써 30여년 전 연금 수급 나이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금 쉰 이하는 67세가 넘어야 연금을 받는다.
65세 이상 미국인 가운데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4%에 불과하다고 한다. 85세 이상도 10%다.
그만큼 미국 노인들이 건강하고 남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준을 더 끌어올리자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미국은 경로(敬老) 의식이 상대적으로 느슨해 이런 변화가 우리보다 어렵지 않다.
▶이번엔 일본 정부가 도전장을 내미는 듯하다.
노인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그제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10년 전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살짝 건드린 일이 있다.
75세를 기준으로 '전기(前期) 고령자'와 '후기 고령자'로 나눠 의료 혜택을 차별화했다.
그 후 노인들이 등을 돌려 정권이 바뀌었다.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높다더니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에 손을 대보려는 모양이다.
▶사실 일본은 착실하게 토대를 만들어 왔다. 직장의 정년을 예순에서 예순다섯으로 끌어올린 게 3년 전이다.
그 나이를 넘겨 퇴직한 사람을 기업이 다시 고용하면 보조금도 지급한다.
어떤 이는 "노인이라는 말부터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의식과 토대부터 먼저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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