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1.07 정상혁 기자)
'우리 선시(禪詩) 삼백수'
우리 선시 삼백수|정민 평역|문학과지성사|627쪽|2만3000원
사는 게 복잡하니 밥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종일 자도 피로가 안 풀린다.
이럴 땐 자양강장제 대신 선시(禪詩) 한 수.
"아침 내내 밥 먹어도 무슨 밥을 먹으며/ 밤새도록 잠잤어도 잠잔 것이 아니로다/
고개 숙여 못 아래 그림자만 보느라/ 밝은 달이 하늘 위에 있는 줄을 모른다네."
조선 중기 승려 동계 경일(1636~1695)이 처방을 내려주는 것이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1055~1101)부터 만해 한용운(1879~1944)에 이르기까지
선승들의 시 300수를 모았다.
소순기(蔬筍氣), 채소와 죽순만 먹어 기름기 쫙 빠진 말의 향연.
시 자체로 워낙 담백한 데다, 한시 전문가인 저자가 짧은 해설을 달아 깨끗한 소화를 돕는다.
"추위 더위 갈마듦은 보통의 일이거니…/ 묵은해 가고 새해 온들 기뻐할 게 무언가."
무심히 읊은 원감 충지(1226~1292)의 '새해' 말미에 "달력만 바꾼다고 새해가 아니다.
내가 새로워져야 새해다"라고 간단히 덧붙이는 식이다.
선시는 선식(禪食) 같은 것.
대개 무욕과 적막과 반성을 노래하다 보니 그 맛이 그 맛 같고, 뜬구름 잡듯 허망해 보일 수도 있다.
몸이 투정을 부릴수록, 묵좌하듯 가만히 들어앉아 먼 산에서 불어오는 청담(淸談)을 들이마시는 연습을 하자.
"삼만 축의 시서에도 들어 있지 아니하고/오천 함의 경전과도 아무 관계없다네/
말하기 전 담긴 뜻이 이미 새어나오니/문자로 수고롭게 다시 가리키리오."
중관 해안(1567~?)이 쓴 이 선시의 제목은 언외(言外).
활자를 떠나 몸이 가벼워지는 언어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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