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다 싶은 한방을 기대할 텐데 그런 게 있겠어요?”
8월 가계부채 종합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는 금융당국 사람들은 요즘 걱정이 많다. 가계부채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뾰족수는 사실 없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지난 3일 지명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를 단기간에 해결할 방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계부채는 그만큼 한국경제를 무겁게, 또 오랫동안 짓누를 짐이다. 최 후보자는 “가계부채는 확실히 GDP(국내총생산) 규모에 대비해 과다하고, 이것이 소비의 발목을 잡고 지속적 성장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임시절 “가계부채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칼이 줄에 매달려 머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에 비유했다.
주택안정을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강화하는 `6·19 부동산대책`이 시행된 3일 서울 여의도 한 시중은행 주택자금대출 창구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 |
◆가계부채 ‘주범’은 정부
“예전에 주택담보대출 50조원 만기가 도래하자 긴장감이 고조됐다.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왔고 대책을 마련하기 바빴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의 회고다. 그가 말한 예전은 불과 십수년 전이다. 이 관계자는 “50조원에도 그렇게 당국을 긴장시키던 가계부채가 어떻게 제어되지 않고 1400조원 가까이 불어났겠느냐. 경고음을 울려야 할 국가기능이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에 눌려 마비된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는 일종의 적폐다. 잘못된 경제정책의 산물이다. 지난 9년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부채에 의존한 단기부양책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10년 이상 긴 안목으로 저성장시대를 극복하는 구조개혁을 꾸준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조순 전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 석학과 원로들의 조언이 이어졌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저금리로 고삐 풀린 돈들은 가계대출을 거쳐 아파트 등 자산시장으로 쏠렸다. 가계부채란 위험을 키우며 비생산적인 곳으로 흘러들어 집값을 올리고 서민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박 전 총재는 “가계부채를 늘리고 집값을 올리는 정책은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나쁜 정책”이라고 말하곤 했다. “앞으로 남는 건 일시적으로 경기가 좋아진다는 것이고 뒤로 밑지는 건 집값 상승으로 서민가계의 부담을 키우고 후손들이 집을 갖지 못하게 하며 국민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박근혜정부에서 더욱 가팔라졌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며 가계부채 연평균 증가액은 40조원→ 60조원 → 81조원으로 늘었다. 박근혜정부에서 다섯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와 각종 부동산 거래규제를 완화한 결과다. 이렇게 화끈하게 규제를 풀어 경기를 부양했으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세 정권을 거치면서 4.9%→ 3.2%→ 2.95%로 둔화했다. 갚아야 할 빚은 폭증하는데 주머니 사정은 나빠지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관료 출신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박근혜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실패라고 본다. 빚내서 집 사도록 한 거 말고 한 게 뭐가 있나. 그 바람에 집값만 폭등했다”고 혹평했다.
◆치솟는 위험지표
박근혜정부에서 가계부채가 폭증하면서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무섭게 치솟았다. 작년 말 기준 178.9%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높은 편에 속한다. 이 비율은 2008년 143%에서 해마다 높아졌다. 미국과는 정반대 흐름이고 일본과도 대비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선 혹독한 부채감축이 진행됐다. 그 결과 2008년 136%이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2015년 112%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일본은 129%에서 135%로 약간 높아졌을 뿐이다.
한국보다 이 비율이 훨씬 높은 나라들도 제법 있기는 하다. 2015년 말 기준으로 덴마크가 292%, 네덜란드가 277%에 달하는 등 적잖은 선진국 가계부채 비율은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가 잘돼 있는 이들 나라와 한국의 사정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결정적 한방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단 2차 경제현안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당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너무 불충분해서 대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면피성 대책으로 보인다”고 혹평했다. 가계부채는 지금 당시보다 228조원 더 늘었다. 이번엔 다를까.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대책에 부동산 문제, 성장과 소득 증대 등 근본적 처방이 나와야 하는데 과연 그런 게 나올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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