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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확 바꾸자] '1400조' 육박..시한폭탄 가계부채 주범은

바람아님 2017. 7. 5. 10:24
세계일보 2017.07.04. 19:22

역대 정권들 경기 부양에만 매몰돼 / 기준금리 내리고 부동산 규제 완화 /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율 179% / 결국 경제성장률 4.9%→2.95% 둔화 / 내달 발표 정부 종합대책 관심 집중

“이거다 싶은 한방을 기대할 텐데 그런 게 있겠어요?”

8월 가계부채 종합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는 금융당국 사람들은 요즘 걱정이 많다. 가계부채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뾰족수는 사실 없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지난 3일 지명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를 단기간에 해결할 방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계부채는 그만큼 한국경제를 무겁게, 또 오랫동안 짓누를 짐이다. 최 후보자는 “가계부채는 확실히 GDP(국내총생산) 규모에 대비해 과다하고, 이것이 소비의 발목을 잡고 지속적 성장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임시절 “가계부채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칼이 줄에 매달려 머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에 비유했다.

가계부채 걱정을 해소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으로 점진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채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이하로 막고, 가계소득을 최대한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주택안정을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강화하는 `6·19 부동산대책`이 시행된 3일 서울 여의도 한 시중은행 주택자금대출 창구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

◆가계부채 ‘주범’은 정부

“예전에 주택담보대출 50조원 만기가 도래하자 긴장감이 고조됐다.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왔고 대책을 마련하기 바빴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의 회고다. 그가 말한 예전은 불과 십수년 전이다. 이 관계자는 “50조원에도 그렇게 당국을 긴장시키던 가계부채가 어떻게 제어되지 않고 1400조원 가까이 불어났겠느냐. 경고음을 울려야 할 국가기능이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에 눌려 마비된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는 일종의 적폐다. 잘못된 경제정책의 산물이다. 지난 9년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부채에 의존한 단기부양책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10년 이상 긴 안목으로 저성장시대를 극복하는 구조개혁을 꾸준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조순 전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 석학과 원로들의 조언이 이어졌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저금리로 고삐 풀린 돈들은 가계대출을 거쳐 아파트 등 자산시장으로 쏠렸다. 가계부채란 위험을 키우며 비생산적인 곳으로 흘러들어 집값을 올리고 서민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박 전 총재는 “가계부채를 늘리고 집값을 올리는 정책은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나쁜 정책”이라고 말하곤 했다. “앞으로 남는 건 일시적으로 경기가 좋아진다는 것이고 뒤로 밑지는 건 집값 상승으로 서민가계의 부담을 키우고 후손들이 집을 갖지 못하게 하며 국민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박근혜정부에서 더욱 가팔라졌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며 가계부채 연평균 증가액은 40조원→ 60조원 → 81조원으로 늘었다. 박근혜정부에서 다섯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와 각종 부동산 거래규제를 완화한 결과다. 이렇게 화끈하게 규제를 풀어 경기를 부양했으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세 정권을 거치면서 4.9%→ 3.2%→ 2.95%로 둔화했다. 갚아야 할 빚은 폭증하는데 주머니 사정은 나빠지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관료 출신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박근혜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실패라고 본다. 빚내서 집 사도록 한 거 말고 한 게 뭐가 있나. 그 바람에 집값만 폭등했다”고 혹평했다.


◆치솟는 위험지표

박근혜정부에서 가계부채가 폭증하면서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무섭게 치솟았다. 작년 말 기준 178.9%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높은 편에 속한다. 이 비율은 2008년 143%에서 해마다 높아졌다. 미국과는 정반대 흐름이고 일본과도 대비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선 혹독한 부채감축이 진행됐다. 그 결과 2008년 136%이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2015년 112%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일본은 129%에서 135%로 약간 높아졌을 뿐이다. 


한국보다 이 비율이 훨씬 높은 나라들도 제법 있기는 하다. 2015년 말 기준으로 덴마크가 292%, 네덜란드가 277%에 달하는 등 적잖은 선진국 가계부채 비율은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가 잘돼 있는 이들 나라와 한국의 사정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결정적 한방은 없다.”

정부는 8월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껏 논의 흐름으로는 신DTI(Debt To Income ratio·총부채상환비율), DSR(Debt Service Ratio·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와 같은 대출규제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같은 대출 규제가 근본적 해결책일 수는 없다. 대출 통로를 조인다고 해서 기왕에 쌓여 있는 부채들의 위험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단 2차 경제현안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년 전 정부가 종합가계부채 대책(2015년 7월)을 내놓을 때도 대출 규제가 고작이었다. 핵심이 처음부터 원금을 갚도록 하고,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빌려주라는 것. 당시 종합대책 마련에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국토교통부, 금융감독원, 한은, 주택금융공사 등 정부와 관련 기관이 모두 참여했지만 대책은 ‘은행 창구’에 모아졌을 뿐이다.

당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너무 불충분해서 대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면피성 대책으로 보인다”고 혹평했다. 가계부채는 지금 당시보다 228조원 더 늘었다. 이번엔 다를까.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대책에 부동산 문제, 성장과 소득 증대 등 근본적 처방이 나와야 하는데 과연 그런 게 나올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