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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66] 촉감

바람아님 2018. 4. 11. 08:25
조선일보 2018.04.10. 03:1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남자 중에는 악수하며 손을 쥔 채 연신 주물럭거리는 이가 있다. 슬그머니 손을 빼려 하면 더 세게 움켜쥐며 가까이 잡아당기기까지 한다. 나는 이런 악수를 끔찍이 싫어한다. 게다가 별나게 손에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면 정말 고문이 따로 없다. 신기하게도 내 관찰에 따르면 이런 양반은 대부분 훗날 정치권에 발을 담근다.


신체 접촉은 같은 남자끼리도 이토록 역겨운데 남녀 사이엔 오죽하랴? 인간은 기본적으로 오감(五感)을 지닌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이다. 동물계를 통틀어 좀 더 세분하면 방향 감각, 평형감각, 자기장 감각 등 다양한 감각이 있다. 최근 새롭게 번역해 나온 책 '던바의 수'에서 옥스퍼드대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 교수는 모든 감각 중에서 촉각이 가장 강렬한 자극을 유발한다고 단언한다.


'미투' 열풍이 거세다. 말로 하는 성희롱도 용서받을 수 없지만 남의 몸에 손을 대는 단계로 넘어가면 심각함의 수준이 달라진다. 촉각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인 피부는 눈·코·입보다 면적이나 감도로 볼 때 압도적이다. 멀리서 호랑이 소리가 들리거나 냄새가 나거나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걸 알아차렸을 때에도 소름이 돋겠지만, 실제로 붙들려 핥음을 당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진화 과정에서 털을 잃고 맨살을 드러낸 인간은 특별히 촉감에 민감하다. 피부 부위에 따라 느끼는 강도가 천차만별이다. 입맞춤은 볼에다 하느냐 입술에다 하느냐에 따라 느낌과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가장 폭력적 단계인 성폭행도 따지고 보면 여성의 피부 조직 중 가장 은밀하고 민감한 부위를 남성의 피부가 침범하는 행위다.


거듭 강조하건대 청각과 시각을 유린하는 성추행도 결코 허용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 지켜줘도 모든 게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이다. 완벽하게 허용하지 않는 한 절대 여성 몸에 손대지 말라. 나는 남자인데도 여성이 먼저 사진을 찍자며 덥석 팔짱을 끼면 적이 불편하다. 서로 함부로 만지지 말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