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5.17 안용현 논설위원)
1997년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망명했을 때 북한의 첫 반응은 '납치극'이었다.
그러나 망명 사실이 굳어지자 곧바로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고 낯빛을 바꿨다.
잠시 관망하던 북은 황 비서가 "김일성은 속물" "김정일은 비겁하다"며 김씨 일가를 직접 겨냥하자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때 등장한 '인간쓰레기'란 표현은 북이 탈북자들을 비난하는 용어가 됐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03년 7월 서울 강연에서 북 인권 상황을 지옥에 비유하며 김정일을 "폭군"이라고 했다.
그 가운데 김정일을 40여 차례 호칭 없이 이름만 불렀다. 격앙한 북은 볼턴을 'Human scum(인간쓰레기)'이라고 했다.
▶북은 16일 대남 통지문으로 남북 고위급 회담 연기를 일방 통보하며 "천하의 인간쓰레기까지 최고 존엄을 헐뜯고"라고 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김정은을 언급하는 내용의 자서전을 내자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같은 날 볼턴 보좌관도 비난했다.
그런데 트럼프와 회담을 앞둔 탓인지 볼턴은 '인간쓰레기'가 아니라 '사이비 우국지사'라고 했다.
▶흔히 북한을 김씨 왕조 국가라고 하지만 신정(神政) 체제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왕은 사람이지만, 신은 하늘에 있는 존재다.
북한 김씨의 '절대성'과 '무오류성'이 무너지면 신(神)에서 사람으로 내려와야 한다.
누가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도 결국 사람이다'고 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이 김씨들과 운명 공동체인 특권 집단이 북한 당·군 간부들이다.
김씨의 신성(神聖)이 깨지면 이들에게도 위협이 된다.
만약 이 중 누군가 김씨에 대한 비판을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북 간부들로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김씨 일가 비판에 대해선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북한 체제의 구조 자체가 그렇다.
▶태영호 자서전 중 김정은 어머니 고용희와 친형 김정철에 관한 내용이 김정은에겐 가장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북에서 천대받는 재일교포 출신인 고용희를 공개하기 어렵다. 다른 왕손(정철)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서방 언론의 김씨 일가 관련 폭로에는 '모략과 날조'라고 할 수 있지만 고위 탈북자의 말은 무게가 다르다.
해외 인터넷에 접속하는 북 주민이 가장 먼저 검색하는 키워드가 '김정은 가족'이라고 한다.
태영호 자서전(3층 서기실의 암호) 같은 진실이 가짜를 몰아내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발간…"김정은 급하고 거친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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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14일 펴낸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기파랑, 544쪽) 표지. 태 전 공사는 북한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와 북한의 내부 모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과 일화 등을 소개했다. [기파랑 출판사 제공=연합뉴스] 북한 대외정책 기조·내부 모순…김정은 육성·일화 등 소개 "北 주장 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국의 핵 불사용 담보 전제" 인터뷰하는 태영호 전 북한공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며 맞받아쳤다고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자서전을 통해 밝혔다.태 전 공사는 14일 펴낸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기파랑, 544쪽)에서 북한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와 북한의 내부 모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과 일화 등을 소개했다. 진행한 회담 기록문에 의하면 리 부장은 "조선은 이번에 핵실험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산을 넘었다. 이제라도 핵개발을 중지하고 경제건설에 전념하기 바란다. 핵개발을 중지한다면 중국은 조선에 대한 경제군사적 지원을 늘릴 것이다. 핵으로는 조선의 체제를 지킬 수 없다. 경제부터 조속히 회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태 전 공사는 전했다. 그러자 강 부상은 "조선반도 비핵화란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며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반도는 결코 비핵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능하다"며 "수령님의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중국이 조선과 미국의 관계를 중재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저자는 소개했다. 강 부상은 또 과도한 군비경쟁이 소련 붕괴로 이어졌다는 리 부장의 지적에 맞서 "내가 지금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 (리자오싱)과 담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청나라 사절 이홍장과 회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소련이 붕괴된 것은 미국과의 군비경쟁 때문이 아니다. 당이 인민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게을리했고 당 자체가 부패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김정은 위원장의 성격에 대해 태 전 공사는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고 소개했다. 2013년 7월 재개관을 앞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전쟁기념관)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보고를 받은 김 위원장은 물바다인 지하에 구둣발로 들어간 뒤 "내가 그렇게 불조심하라고 했는데 주의 안 하고 무엇을 했느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욕을 했다고 저자는 소개했다. 또 2015년 5월 김 위원장이 자라양식공장을 현지지도했을 때 새끼 자라가 죽어있는 것을 보고 공장 지배인을 심하게 질책한 뒤 처형을 지시해 즉시 총살이 이뤄졌다고 저자는 전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에 대해 "개성공단이 조선 체제에 장기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하지만 얻은 게 더 많다. 우선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돈을 벌었다"고 말한 것으로 저서에 소개됐다. 김 위원장은 또 "개성 시민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제와 관리가 용이해졌다. 다른 지역은 장마당 때문에 주민 통제가 얼마나 힘들어졌나. 개성 시민 5만 명이 매일 한곳에 모여 일하고 퇴근하는데 따로 무슨 관리가 필요한가. 총체적으로 우리가 훨씬 이익이다. 이런 경제특구를 내륙으로 확대해야 한다. 개성공단 같은 곳을 14개 더 만들라"고 말했다고 태 전 공사는 전했다. 또 2014년 영국의 '채널4'가 북핵 문제를 다룬 연속극 '오퍼짓 넘버'(Opposite Number) 제작 계획을 밝히자 김영철 당시 국방위 정책총국장이 평양 주재 영국대사를 소환해 '영국 정부가 반북 드라마 제작을 중지하지 않으면 영국 내에서 상상할 수 없는 보복행위가 일어날 것이고 그 책임은 영국 총리가 져야 할 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전달했다고 태 전 공사는 전했다. 태 전 공사는 '말하자면 채널4 청사를 폭파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5년 9·19공동성명 체결 이후 북한 전력공업성 전문가들이 합의에 변전소 건설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며 '외무성이 합의를 잘못했다'고 비난했고, 외무성은 '시간을 벌기 위해 사기를 치고 있으니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대응했다고 태 전 공사는 주장했다. 아울러 태 전 공사는 저서에서 평양시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인 노동당 본청사 3층 서기실의 역할에 주목했다. 노동당 본청사는 지난 3월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대표단을 맞이한 곳으로, 당시 남측 고위인사에게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반적으로 본청사가 우리 '청와대' 격이라면 서기실은 '비서실' 역할을 한다고 분석되는 곳이다. 태 전 공사는 "3층 서기실은 기본적으로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라며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주민들이 김씨 부자의 실체를 알게 되면 3층 서기실은 와해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3층 서기실'은 대통령 비서실에 가깝다. 이곳은 중앙당 일꾼들도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는 완전한 금지구역으로 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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