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음대 첼로 교수 비안 쌩(Bion Tsang)이 하버드대 학생 시절, 아내는 그의 기숙사 사감이었다. 어느 날 레너드 번스타인이 하버드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아내는 그의 앞에서 비안이 연주할 수 있도록 작은 음악회를 기획했다. 번스타인은 그 당시 비안을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었다.
음악회가 임박했는데도 사회를 찾지 못한 아내는 끝내 내 손에 마이크를 쥐여줬다.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모임에 사회를 봐왔지만, 막상 살아 있는 전설이 맨 앞줄 가운데 좌석에 앉는 순간 나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엄청난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그가 나를 지긋이 올려다보는데 마치 장풍 같은 충격파가 내 온몸을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비안의 연주가 끝난 다음 강평을 청해 들으려 그를 무대로 모셨다. 마이크를 건네는 나를 그가 두 팔을 벌려 안았다. 가볍게 볼에 키스하는가 싶더니 홀연 귓구멍 속이 후끈거림을 느꼈다. 그때가 1987년으로 기억하는데 그 전율은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번스타인은 동성애자였다. 하지만 그는 칠레 태생 여배우와 결혼해 자식을 셋이나 낳았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양성애자로 보였지만 그의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그저 '결혼한 동성애자'였단다. 놀랍게도 그의 아내는 그가 동성애자임을 알면서도 결혼했단다. 하지만 하버드에서 듣기로는 그가 끝내 하버드대 교수가 되지 못한 이유는 그가 동성애자라서가 아니라 유태인이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하버드대 교수의 절대다수가 유태인이건만. 편견은 참으로 다양한 탈을 쓰고 나타난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차이콥스키, 앤디 워홀, 엘튼 존…. 예술가 중에는 왜 이리도 동성애자가 많을까? 랠프 월도 에머슨, 오스카 와일드, 미셸 푸코, 유발 하라리 등 작가도 많다. 이번 토요일은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 기념일이다. 불현듯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마리아'가 듣고 싶다. 번스타인,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줘 정말 행복합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其他 > 최재천의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87] 기후변화와 영양실조 (0) | 2018.09.05 |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86] 폭염 반면교사 (0) | 2018.08.29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84] 돌돈과 가상 화폐 (0) | 2018.08.16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83] 도피城 (0) | 2018.08.08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37] 개치네쒜 (0) | 2018.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