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他/최재천의자연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86] 폭염 반면교사

바람아님 2018. 8. 29. 10:34
조선일보 2018.08.28.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지긋지긋한 무더위가 한발 물러섰다. 태풍 '솔릭'이 예상보다 얌전하게 한반도를 빠져나가며 그동안 찰거머리처럼 들러붙던 북태평양고기압을 일본 쪽으로 슬쩍 밀어냈다. 살면서 이번처럼 태풍을 고대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올여름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1994년 여름의 기록을 거의 다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해냈다. 최고기온이 33도를 넘는 폭염이 31.2일이나 이어져 1994년의 31.1일을 앞질렀다. 1942년 8월 1일 대구 기온 40도가 우리나라 기상 관측 사상 최고 기록이었는데, 올해에는 8월 1일 홍천 41도를 비롯해 40도 이상을 무려 여섯 차례나 찍었다.


1994년은 내가 15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해였다. 그런데 날씨만큼은 10년 이상 열대 정글을 누비다 돌아온 내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어느 날 연구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창 밖이 어두컴컴해지더니 이내 장대비가 쏟아졌다. 어릴 때 보던 주룩주룩 장맛비가 아니었다. 파나마 정글에서 맞던 열대 호우였다. 나는 그 순간 우리나라가 아열대화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때부터 지금껏 나는 글과 강연, 그리고 각종 사회 활동을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려 동분서주하며 살았다. 2008년 민간단체인 기후변화센터를 함께 만들어 지금까지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작년부터는 국회기후변화포럼의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금년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명예대사로 위촉돼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강연을 하고 다닌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폭탄이 터지듯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급습하는 현상이 아니라서 시급성을 알리기가 쉽지 않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곧바로 튀어나와 살 수 있지만 물속에 넣고 서서히 끓이면 함께 서서히 죽어간다. 다행히 이번 폭염이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삶의 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