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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88] 숭례문과 브라질 국립박물관

바람아님 2018. 9. 18. 06:44

(조선일보 2018.09.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2008년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8일 일요일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탔다.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불길에 휩싸인 숭례문을 보며 부들부들 떨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2018년 9월 2일 일요일에는 지구 반대편 브라질 리우 국립박물관이 전소됐다.

항공사진을 보니 석조 얼개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 내부는 빈 강정처럼 텅텅 비었다.

별관에 따로 보관한 유물 일부와 도서관 장서 50만 권을 빼곤 소장품의 거의 90%가 사라졌다.

전쟁 중에도 이만큼 참혹하게 파괴된 예는 없을 것이다.

브라질 국립박물관은 1818년에 건립되어 동식물 표본은 물론 지질학·인류학·고고학·민속학 관련 유물을

무려 2000만 점이나 소장하고 있던 대규모 박물관이었다. 하지만 브라질 경제가 무너져 내리며 2014년부터 예산이

삭감되어 지난 6월 200주년을 맞았건만 박물관 상태는 이미 고사(枯死) 직전이었다.

이번 화재 때 경보기나 자동 소화기는 작동하지도 않았고 박물관은 보험에도 들어 있지 않았단다.


브라질 국립박물관 화재는 피해 규모로 볼 때 숭례문 화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숭례문의 경우에는 상층의 90%가량이 훼손되었을 뿐 고주 등 주요 골격은 상당 부분 살아남았다.

큰 부상은 입었지만 목숨은 건진 셈이었는데 브라질 국립박물관은 그야말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은 실내외에 촘촘히 CCTV를 설치해 24시간 살피고 있고 소화 시설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다. 만일의 경우 화재가 발생하면 유물과 서적이 젖는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물이 아니라 산소 유입을

차단해 불을 끄는 하론가스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소방 훈련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국보 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우리는 숭례문 화재에서 많은 걸 깨달았다.

나 역시 국립생태원에 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군수님 다음으로 서천소방서장님을 찾아뵙고 시설 안전에 관한

도움을 청했다. 사고는 방심을 먹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