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01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아프간의 부정부패, 탈레반 키우고 나이지리아 '오일 머니'는 뇌물로
절망한 국민들, 테러 단체 가담해… 모든 부정행위 배경엔 '독재' 있어
부패 권력은 어떻게 국가를 파괴하는가
세라 체이스 지음|이정민 옮김|이와우|314쪽|1만6000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재임 시절 최고 2223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수수했다는 사실과 그 명세를 밝힌 수첩 등이 최근 공개됐다.
외신들은 한때 세계적 농업 선진국이던 아르헨티나가 IMF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로 추락한 데는
대통령에서부터 말단 관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진 부패가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 공영라디오(NPR) 특파원을 지낸 저자가 10여년간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며 주목한 것도
나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부패상이었다.
2001년 말 탈레반을 축출한 미군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 들어간 저자는, 여전히 폭력과 가난에 신음하는
주민들이 탈레반 통치에 향수를 느끼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충격받는다. 미국 정부도 2009년 아프간 선거에서
대규모 부정이 저질러지고 나서 반군을 지지하는 시민이 늘어나자 몹시 당황했다.
그 부패상은 충격적이다.
이 나라에선 가족이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었을 때도 성직자에게 뇌물을 줘야만 사망신고를 할 수 있다.
칸다하르에서 파키스탄으로 국경을 넘어가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차로 100㎞를 달리는 동안 8번 검문에 걸리고
그때마다 통행료를 내야 한다. 대통령 친인척들은 부패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다.
하미드 카르자이 당시 대통령의 형 카이엄은 국가 공유지를 헐값에 사들여 주택단지로 개발한 뒤 내전을 피해 이주해 온
주민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 분노를 샀다. 저자는 정부 최고위직이 부패의 말단에 있는 공무원까지 챙긴다는 점에서
아프간의 부패 사슬은 마피아 조직을 닮았다고 지적한다.
10만달러를 횡령한 경찰국장을 구하기 위해 내무부 장관이 나서는 곳이 아프간이다.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하는 아르헨티나 시민들이 지난 21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회 의사당 앞에서 ‘마피아 여왕을 감옥으로’라고 쓴 플래카드와 돈 가방을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나이지리아에서는 이른바 '자원의 저주'가 부패와 결합했다.
비옥한 땅을 가진 농업국가였던 나이지리아는 1980년대 오일 붐으로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 되면서
오히려 국가적 쇠퇴를 겪었다. 넘쳐나는 돈을 뜯어먹기 위해 온갖 부정한 방법이 개발됐다.
석유를 팔아 쉽게 돈을 벌 수 있으니 다른 산업 육성은 방치됐다. 농산물 수출국이란 위상도 잃었다.
정치권력을 쥐면 석유에서 나오는 돈을 차지할 수 있게 되자 주지사 입후보에만 1000만달러 이상 들어가는
고비용 정치 구조가 만들어졌다.
저자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란 미명 아래 부패한 독재국가를 지원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오히려 국가의 부패를 일소함으로써 해당 국가 주민이 극단주의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전쟁보다는 드론을 띄워 테러 분자를 암살하는 대테러 방안이 도입됐지만 국가의 부패에 절망하고
분노한 주민들이 테러 세력에 가담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원조도 섣불리 하면 오히려 해롭다. 구호품 배분 과정에 부정이 개입돼 주민들 분노를 사면 역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그가 카불에 새로 부임한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에게 "아프간 정부를 버리고 국민에게 집중하라"고
조언한 것도 이런 이유다. 국가의 부패는 한 나라의 문제만도 아니다.
저자는 오늘날 세계적 골칫거리인 북한의 핵개발은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의 부패한 관료들에게 북한이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인문적 글읽기의 재미도 선사한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에라스뮈스의 '기독교도 군주 교육론' 등에서 부패와 관련된 글을 찾아 소개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관용을 베푸는 데 인색하라"고 권하지만 "국민의 소유물과 여성을 탐내고 약탈하는 행위야말로
군주가 증오를 사는 최악의 방법"이라며 부패의 유혹만큼은 뿌리치라고 했다.
중세 페르시아의 명재상 니잠 알물크는 아랍의 '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저서 '시야사트 나메'('정치의 서'라는 뜻)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정부의 능력, 특히 최고위층 관리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능력은 정부 존속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갈파했다.
제왕의 통치 지침서 중 12세기 영국 성직자 솔즈베리 존이 헨리 2세를 위해 쓴 '폴리크라티쿠스'가 눈길을 끈다.
존은 온갖 부정행위를 포괄하는 항목을 열거한 뒤 이를 가능케 하는 단 하나의 단어를 제시했는데 다름 아닌 '독재'다.
3대에 걸친 세습을 통해 1인 절대지배 체제를 확립한 북한에서도 뇌물 없인 되는 일이 없다지 않은가.
(원제:Thieves of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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