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0.13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인간 창조력을 넘어선 '머신' 모든 걸 공짜로 유통하는 '플랫폼'
전문가를 무력화하는 '크라우드' 트리플 레볼루션 시대 맞은 인류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
앤드루 맥아피, 에릭 브린욜프슨 지음|이한음 옮김|청림출판|456쪽|1만8000원
골드만삭스,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면접을 도입하고 있다는 소식이
최근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AI 면접관의 출현은 오늘날 비즈니스 업계가 겪고 있는
혁명적 변화 사례의 하나에 불과하다.
많은 기업이 이미 핵심 인력을 양성하기보다 강호의 고수들을 찾아내 임무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우버의 승승장구는 어제까지 이름도 알 수 없던 회사가 오늘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큰돈을 움켜쥘 수 있다고 웅변한다.
그 반대편에선 전통의 제조·서비스 기업들 신음 소리가 들린다.
미 MIT 교수로 디지털 비즈니스를 연구하는 두 저자는 21세기 들어 진행되는 변화와 혼돈의 진앙으로
'머신(기계)' '플랫폼' '크라우드(군중)'를 지목한다.
먼저 머신. 알파고가 증명했듯 현대 기계 문명의 총아인 인공지능은 더 이상 주어진 명령문을 단순히 따르는 기계가 아니다.
그동안 기계의 연산은 '폴라니의 역설'이란 장벽에 막혀 인간처럼 사고하는 단계로 도약하지 못했다.
'인간은 그냥 자전거를 탈 뿐 어떻게 타는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프로그램화할 수 없었다'는 딜레마다.
이 난관은 스스로 학습하는 러닝머신이 등장하며 풀렸다.
인류는 이 창조적 기계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계의 발전이 생물의 진화 과정을 따른다는 설명도 흥미롭다.
일본에서 사용 중인 오이 분류 인공지능은 눈[目]에 해당하는 센서로 오이의 크기를 잰다.
저자들은 눈을 가지게 된 기계가 향후 러닝머신과 함께 비약적인 도약을 이룰 것으로 내다보며 그 근거로 5억년 전
있었던 '캄브리아기(期) 대폭발'을 든다. 이 시기 생명체는 눈을 갖게 되면서 종류가 우후죽순처럼 크게 늘었다.
저자들은 혁명적 변화를 불러온 기계의 발전과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는 개인·기업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변화의 두 번째 진앙은 인터넷망(網)으로 연결된 플랫폼 기업들이다.
자동차 공유 서비스 플랫폼 '우버'가 대표적이다. 우버 역시 기존 산업을 토대부터 허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큰 택시 회사가 우버에 손님을 빼앗기고 파산했다.
음반 산업과 대형 수퍼마켓, 미디어 산업도 고전 중이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이용해 정보를 무료로 무한히 복제하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즉시 나르는 플랫폼 방식에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과 협업하는 굴뚝 산업은 대개 '돈은 못 벌면서 재주만 부리는 곰'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나오는 이익 대부분을 구글과 애플이 가져가는 게 그 증거다.
플랫폼은 인간처럼 실수를 해가며 진화한다.
책은 2014년 호주 시드니에서 인질극이 발생하자 현장을 탈출하려는 시민들이 너도나도 우버에 접속했던 사례를 든다.
콜이 쇄도하자 우버는 수요 공급 법칙 프로그램에 따라 요금 할증으로 대응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샀다.
가격 결정 알고리즘의 하자를 보완한 우버는 이듬해 파리 테러 때는 긴급 상황 경고 메시지를 보내서 박수를 받았다.
새로운 세상을 여는 마지막 요소는 군중(crowd)이다.
네트워크와 연결된 이 군중은 '군중 심리' 같은 데 등장하는 그 군중과 다르다.
새로 등장한 군중은 언제든 자신의 지식과 전문성, 열정을 세상과 공유한다.
기업들은 핵심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 전문가를 육성하기보다 사안별로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수소문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전문가들이 설 자리는 쪼그라든다.
저자들은 기존 산업이 생물학에서 말하는 대멸종기(期)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기존 기업들에 혁신과 재탄생 기회는 없는가. 책은 GE의 혁신 노력을 주목한다.
GE는 제품 출시 방식부터 바꾸겠다는 각오 아래 2014년 루이빌대학과 '퍼스트빌드'라는 공동 창작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제빙기 개발 대회를 열어 수혈받은 외부의 아이디어와 사내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속이 빈 형태의 얼음을 만드는
제빙기를 선보였다. 빈 공간에 맛을 내는 물질을 주입할 수 있게 한 제빙기의 제작비는 '인디고고'라는 크라우드펀딩
커뮤니티에서 판촉 행사를 통해 모았다.
군중이 그때까지 없던 제품 아이디어를 내고 상품화에 돈을 댔으며 판매에도 가담한 것이다.
책을 덮을 때까지 혼란스럽게 진행되는 디지털 혁명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아주 험한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책에 소개된 기업의 흥망과 제품의 성공·실패 사례가 흥미롭고, 때로 웃음과 연민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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