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매일신문 2009.03.28. 문무학.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꽃 보고 춤추는 나비와..... 송이
꽃 보고 춤추는 나비와 나비 보고 당싯 웃는 꽃과
저 둘의 사랑은 절절(節節)이 오건마는
어떻다 우리의 사랑은 가고 아니 오나니.
<각주 - 당싯 : (옛말) 방긋(입을 예쁘게 약간 벌리며 소리 없이 가볍게 한 번 웃는 모양)의 옛말>
봄꽃이 앞다투어 피고 있다. 꽃샘추위가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자연의 큰 흐름은 한 치 어김이 없다. 맞이할 것은 맞이하고 보낼 것은 보내고 만다. 난만한 봄꽃에 얹는 생각이사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설사 아픔이라도 사랑이 제격이 아닐까.
이 시조는 해주 유생 박준한(朴俊漢)과 기생 송이(松伊)의 애달픈 사랑의 기록이다. 박준한이 과거 길에 강화의 객사에 머물게 되었는데, 주모가 '송이'라는 정절이 뛰어난 기생이 있다 하여 술자리를 같이했다. 술이 거나해진 유생은 송이를 위해 시 한 수를 읊고 화답하라고 채근했다. 그러나 송이는 화답하지 않았다. 유생이 부른 노래가 진원 부원군 고산 류근(柳根)의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유생은 송이의 시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룻밤 정을 나누고 싶다고 했지만 송이는 아무에게나 정을 줄 수 없다는 시로 화답했다. 그리고 과거길 객줏집에 빠져 큰일을 그르치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무안을 덜어줬다. 참 머쓱해졌을 박준한, 그는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러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송이는 그때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반년이 지난 뒤 유생은 진사시에 급제하여 나타났고 송이는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박준한은 송이를 데리러 오겠다는 언약을 하고 떠났는데,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흘러 일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기다림에 지친 송이가 언약을 의심하고 있을 무렵 시 한 수가 전달되었다. 병석에서 송이를 그리워하는 애끊는 마음을 담은 시로 서책 속에 끼여 있는 것을 노모가 발견해 보낸 것이었다.
전갈에 의하면 박준한은 급제 후 집으로 돌아와 바로 병석에 누웠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송이는 그 소식을 접하고 통곡하다가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입산한 노모가 계신다는 황해도의 작은 암자에 들어갔다. 속세를 떠나기 전 그들의 시린 사랑을 한탄하는 이 시조를 남기고…. 오! 가고 아니 오는 사랑의 아픔이여!
[윗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다른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
사랑이여! 이별이여! 끝없는 그리움이여!
- 박준한(朴俊漢)과 송이(松伊)의 비연(悲戀)
1.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이리 혀고 져리 헤니 속졀 업슨 헴만 만희
험구즌 인생이 살고져 사란는가
지금에 사라 잇기는 님을 보려 홈이라
무명씨
그저 죽는 것 보다 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한가지 큰 이유는 행여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한가지 때문이라는
노래이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는 너무나 많다. 이것은 사랑을 노래하는 예술의 모든 장르에 어쩌면 이별이라는 짙은 요소가 꼭 등장
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 작품에 끼어든 대부분의 이별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실제로 그 이별이 나 자신에게 닥친다면 견뎌내지 못하는 엄청난 고통 때문에 괴롭고 아파서 피하고 싶어 하리라.
누고 뉘 니르기를 고은님 이별후의
날과 달이 가면 니즈라 하던게고
나달이 하고 갈수록 더욱 셜웨 하노라
무명씨
우리는 일시적인 이별의 아픔을 다시 만나는 희열을 생각하며 참고 견딘다. 여기 영원히 만나지 못할 헤어지는 아픔을 모르고
기다리다 절망과 만나는 슬픈 하소연이 있다. 한량 박준한(朴俊漢)과 송이(松伊)와의 비연이 그것이다.
박준한(朴俊漢)은 선조조 때 해주의 유생(儒生)이나, 그의 행장은 전혀 전하지 않는다. 다만 병와가곡집에 시조 한 수가 전할 뿐
이다.
그가 과시(科試)를 보러 한양에 올라오다가 강화에서 머무른 적이 있었다. 객사에 머무는 동안에 송이(松伊)란 시가를 잘하고
정절이 뛰어난 기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송이란 기생이 어떤 여자인가 하는 호기심에서 청하여 술자리를 같이 했다.
술이 거나해진 박준한은 약간 얏보는 투로 송이에게 시 한 수를 들려 준다.
"송이라 했지? 내 너를 위해 시(詩) 한 수를 읊을 테니 들어 보겠느냐?"
"네, 불러 보옵소서."
요금횡포발섬가 (瑤琴橫抱發纖歌) 거문고 빗기 안고 가늘게 부르는 노래
숙석경성가최다 (宿昔京城價最多) 옛날엔 서울서도 성가가 드높더니
춘색역조란경리 (春色易調鸞鏡裏) 봄빛이 거울 속에 꽃 이울 듯 사라져
백두유락야인가 (白頭流落野人家)} 지금은 흰 머리로 야인 집에 떨어졌네
"어떠냐? 네가 화창을 해야지?"
"네, 그러나 저는 화창을 못하겠사옵니다."
"그래,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네, 송구스럽사오나 지금 부르신 노래는 서방님의 노래가 아니옵니다."
"뭐, 내 노래가 아니라구..."
"네, 그 노래는 전조(前朝)의 진원부원군 고산(孤山) 유근(柳根)님의 노래인 줄 아옵니다."
"그래. 너는 뛰어난 시재를 가진 애로구나. 그러면 그 노래는 누구에게 준 노래냐?"
"예, 증송도기(贈松都妓)이옵니다. 즉 송도기생에게 준 슬픈 노래이옵니다. "
"정말 놀랐구나. 시재가 뛰어난 너와 하룻밤 정을 나누고 싶구나."
"서방님, 제가 노래 하나 부르겠사옵니다."
"그래라. 어디 들어 보자."
솔이 솔이라 하여 무삼 솔만 너겨더니
천심절벽에 낙락장송 내 긔로다.
길 아래 초동의 졉낫시야 걸어 볼 줄 이시랴
여기서 솔이 는 자기 이름 송이(松伊)를 음차(音借)한 것이요, 낙락장송(落落長松)은 절개가 굳은 자신을 비유한 것이며,
초동(樵童)의 졉낫은 돈푼이나 있고 세도께나 있다고 기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덤벼드는 한량을 비유한 표현
으로, 비록 몸은 기생일망정 아무에게나 정을 줄 수는 없노라는 명백한 거절의 표시다.
"음, 나와 같은 무명의 빈한사(貧寒士)는 넘겨다 보지도 말고 잠자코 물러가란 말이구나."
"송구스럽사옵니다. 그런 뜻만은 아니옵니다."
"그럼, 무슨 다른 뜻이 있다는 게냐?"
"네 서방님께옵서는 지금 과시(科試)를 보러 가시는 길이오니, 중도에 객줏집에 빠져서 과시에
게을리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하는 뜻이옵니다."
"오, 고마운 말이로구나. 내 과거를 보고 오는 길에 다시 내려와도 되겠느냐?"
"네, 내려오실 때는 서방님 뜻대로 따르겠사옵니다."
이렇게 헤어진 두 사람이었다.
2. 사랑할 때와 그리워할 때
송이(松伊)는 그 행장이 없다.
다만 [해동가요]의 <작가제씨(作家諸氏)>항에 <명기구인(名妓九人)>이라 하여 '진이(眞伊), 홍장, 소춘풍, 소백주(小栢舟), 한우
(寒雨), 구지(求之), 송이, 매화, 다복(多福)'등을 들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으로만 적혀 있고, 전혀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
[가곡원류]에는 <고지명기(古之名妓)>라고 만 전해진다.
송이(松伊)는 시조 문헌에 나타난 29명의 기녀작가 중에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여인이다. 심재완님의 [역대시조전서]에는
그녀의 작품으로 14수가 있다고 하였으나, 다른 작가의 작품과 혼동된 것을 빼면 7수가 되는데, 이 7수만 하더라도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편에 속한다.
헤어진 박준한이 다시 강화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여섯 달이 지난 어느 초겨울이었다.
진사시에 급제한 박준한은 떳떳한 모습으로 송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당초의 약조대로 뜨거운 정을 마음껏
주고 받았다. 그 밤의 기쁨과 짧은 밤을 송이는 이렇게 읊었다.
닭아 우지 마라 일 우노라 자랑 마라
반야(半夜) 주관(奏關)에 맹상군(孟嘗君) 아니로다.
오늘은 님 오신 날이니 아니 우다 엇더리
새벽 닭 우는 일 없이 계속 밤은 깊어만 가고 새벽 하늘 밝는 일 없으면 낭군 님 떠날 이별도 없을 텐데 하는 간절한 바램을 노래
로 읊은 시이다. 그런다고 어이하랴. 어김없이 날은 밝고 해는 떠오르는 것을. 박준한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떠나야 했다. 그가 떠날 때 송이는 화전지에 시조 한 수를 적어 주며 말없이 눈물로 보냈다.
내 사랑(思郞) 남 주지 말고 남의 사랑(思郞) 탐치 마라
우리 두 사랑(思郞)의 행여 잡사랑(雜思郞) 섯길셰라.
일생에 이 사랑 가지고 괴야 살녀 하노라
그로부터 송이는 기생 생활을 청산하고 수절하면서 서로의 가슴에 뚜렷한 인장으로 남긴 철썩 같은 약속을 믿고 박준한이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6개월이 가고 1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송이는 그래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그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달랬다.
남은 다 쟈는 밤에 내 어이 홀로 깨야
옥장(玉帳) 깊푼 곳에 쟈는 님 생각는고.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라
은하(銀河)에 물이 지니 오작교 뜨단 말가.
쇼 잇근 선랑(仙郞)이 못 건너 오단 말가.
직녀(織女)의 촌(寸)만한 간장이 봄눈 스듯 하여라
못할너라 못할너라 사람되고 못할네라
이별이자(離別二字) 내든 사람 날과 백년 원수로다
추야장(秋夜長) 기나긴 밤의 간장(肝腸)만 스러지리
무명씨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기다리는 박준한에게선 일자 소식도 없다. 직녀(織女)의 촌(寸)만한 간장이나 추야장(秋夜長) 기나긴
밤의 간장(肝腸)이 다 녹아서 없어진다는 여인의 그리움과 기다림의 안타까움을 이 시들을 통하여 짐작이나마 해본다.
그러나 송이는 그의 굳은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오지 못하는 절박한 사연이 있으려니 하고 참고 기다렸다. 드디어 기다
림에 지치고 참음에도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는가. 아니면 박준한의 언약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되었는가. 그러면서도 철썩 같은
님과의 언약을 믿어야 한다고 다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다음 시조에 송이의 그런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리하야 날 속이고 져리하야 날 속이니
원수(怨讐)이 님을 이졈즉 하다마는
전전(前前)에 언약이 중하니 못 이즐가 하노라
다음 시조에는 송이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때 그녀는 어쩌면 소식 없는 무심한 사람을 기다리는 허망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주색(酒色)을 삼간 후에 일정백년(一定百年)을 살쟉시면
주시(酒施)ㅣ 들 관계하며 천일주 ㅣ 를 마실소냐.
아마도 참고 참다가 양실(兩失)할가 하노라
박준한을 기다리다 아까운 젊음만 허송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가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일까?
옥(玉) 갓튼 한궁녀(漢宮女)도 호지(胡地)에 진토(塵土)되고
해어화(解語花) 양귀비도 역로(驛路)에 바렷나니
각씨(閣氏)내 일시화용(一時花容)을 앗겨 무삼 하리오
옥같이 어여쁘던 한(漢)의 궁녀 왕소군(王昭君)도 오랑캐의 첩이 되어 한 줌 티끌로 화하였고, 꽃도 그녀의 아름다움에 부끄러워
꽃잎을 접었다고 하는 천하절색 양귀비도 마외역(馬嵬驛)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여자의 젊음과 함께 피는 한때의 아름다움을
굳이 아껴 두어 무엇 하겠느냐.
3. 작은 암자에 울리는 풍경(風磬) 소리
이럴 즈음에 박준한에게서 인편이 왔다. 너무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송이에게 하인은 서찰 한 통을 내어 놓는다. 급히 뜯어
보니 박준한의 시(詩)한 수만 적혀 있고 아무 말도 없었다.
월황혼(月黃昏) 기약을 두고 닭 우도록 아니온다
새님을 만낫는지 구정(舊情)의 잡히인지
아모리 일시(一時) 인연인들 이대도록 소기랴
시를 받아 든 송이의 눈에는 눈물만 흘렀다. 그토록 그리워 나를 야속하게 생각했단 말인가!
어찌 이렇게 그리워하면서도 그 동안 한번도 소식을 주지 못하였단 말인가?
하인이 전하는 말인즉슨 과시에 급제하고 돌아온 박준한은 그 길로 이름 모를 병으로 자리에 누워 앓았다. 백약이 무효였다.
늙은 홀어머니의 극진한 정성도 효험이 없었다. 위중한 병석에 누운 나날 가운데에서도 송이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 갔지만
사랑을 이룰 수 없는 병든 자신의 몸으로 인해 풀잎에 스친 이슬처럼 흔적도 남지 않을 강화에서 맺은 짧은 밤의 인연을 송이에
게 짐 지우기 두려워하는 박준한의 사려깊은 심중(心中)이 죽음에 이르도록 송이에 대한 그리움을 억제하게 만들었던 것이라고
짐작된다.
끝내 일어나지 못한 그는 늙은 노모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이 죽자 노모는 자식의 장례를
치른 후 불도에 귀의 하고자 입산준비를 하면서 짐을 정리하던 중 아들이 병석에서 써 놓은 한 수 시가 그의 문집 갈피 속에
끼어 있음을 발견하고 사람을 시켜 전해 온 것이 이 시 한 수였던 것이다.
일찍이 소식을 주었으면 천리라도 한달음에 달려 갔을 것이 아닌가. 마치 최경창이 병들었다는 소식에 밤낮 칠주야를 홍랑이
달려 갔듯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송이는 가슴을 져미는 아픔으로 통곡하였다. 박준한의 넋을 위해 울었다.
그 후 송이는 마음을 진정한 다음, 주변을 정리하고 박준한의 노모가 계신다는 황해도의 어느 작은 암자를 찾아가 자신도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기다리던 박준한을 영영 못 만나게 된 그녀는 이승의 슬픈 인연에서 벗어 나고자 입산하기 전 이루지
못한 박준한과의 애달픈 사랑을 아쉬워 하여 마지막으로 시 한 수를 남긴다.
곳 보고 춤추는 나뷔와 나뷔 보고 당싯 웃는 곳과
져 둘의 사랑은 절절(節節)이 오건마는
엇더타 우리의 사랑은 가고 아니 오나니
작은 암자에 울리는 풍경(風磬) 소리 그윽한 어느 깊은 밤, 불연(佛緣)이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일심으로 면벽송경
(面壁誦經)하는 송이를 박준한은 찾아와 줄까? 어느 날 그의 혼백이라도 다가와 송이의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사위어가는 가슴을
어루만져 줄 것인가?
아아 ! 사랑이여 ! 이별이여 ! 가없는 그리움이여 ! 그 아픔의 샘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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