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10.07. 00:08
살아있는 권력이 수사 흔들려 해
문 대통령 어떤 나라 만들려 하나
사람의 유무죄는 사법행정기관이 수사하고 검사가 기소하면 판사가 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한국의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규정일 뿐 아니라 인간 사회가 존속하는 한 작동되어야 할 기본 원리다.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특정인의 유무죄를 가리기 시작하면 인민민주주의가 되어 버린다. 북한의 공개처형 제도나 군중 집단을 동원해 판검사 수천명을 현직에서 쫓아낸 베네수엘라의 사법 쿠데타가 현실 속의 생생한 사례다. 인민민주주의에서 국가 기구는 작동을 멈추고 나라는 무정부 상태에 빠진다. 아니면 전체주의 공포통치 사회로 변경된다. 이런 일을 막아야 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게 ‘국가의 계속성 유지’를 가장 중요한 책무로 적시하고(66조1항)있는 바와 같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수호를 위해 윤석열을 쫓아내라’는 서초동 군중의 무법적 주장을 계속 방치한다면 헌법적 책무를 위반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무총리나 법무장관, 집권당 국회의원들도 언행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서초동 시위 군중을 부추기거나 그 위에 올라타 형사사법기관의 수사를 방해 혹은 범죄 피의자를 공공연히 두둔한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겉은 그럴싸하게 피의자의 인권 보호니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운운하지만 집권 2년반이 다 되도록 한 마디도 않던 인권 보호나 민주적 통제가 왜 유독 대통령이 가장 친애하는 권력 실세 2인자의 범죄 혐의 앞에서 창궐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공무원의 수사방해는 헌법 및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로서 중대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환기하고자 한다.
윤석열 총장의 검찰은 자기가 있는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범죄 수사에 전념하길 바란다. 윤 총장은 “검찰권은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을 수시로 해왔다. 검사는 대통령한테 임명장을 받지만 진정한 임명권자는 대통령 너머 국민이라는 뜻이다. 윤석열이 두 명의 대통령과 한 명의 대법원장을 감방에 보낼 때도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윤 총장이 그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현재의 살아있는 권력을 다뤄 달라는 게 국민의 요청이다. 없는 죄를 만들어 내서도 안되고 드러난 죄를 덮어서도 안된다.
지금 상황이 과거 보다 어렵긴 할 것이다. 현직 대통령과 정부, 집권당이 조국씨를 앞다퉈 보호하고 그와 편먹은 수십만 수호자들이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살아있는 권력도 민심을 이길 수 없다. 윤 검사에 대한 민심의 명령은 조국한테 유죄 혐의를 확정지으라는 것이 아니다. 신성한 국가 형벌권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없이 동등하게 행사하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무리하게 조국씨를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나라는 심리적 내전에서 사회적 내전 상태로 헝클어 졌다. 이 사태의 최종적인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하지만 조씨의 범죄성 여부를 확인해야 할 윤석열의 책임 역시 가볍다 할 수 없다. 온 국민이 조국 장관의 처리를 주시하고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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