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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어르신, 추우세요?..베이비부머의 항변

바람아님 2020. 1. 7. 08:04


중앙일보 2020.01.06. 00:40


추위와 신열, 베이비부머의 징표
신바람 선물 못한 한이 남아
사회적 패권교체는 낡은 혁명개념
민주주의는 패권 아닌 합의정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늦은 밤, 새해를 자축할 겸 와인 바에 잠시 들렀다. 데킬라,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술을 한잔 시켜놓고 생각에 잠길 쯤 갑자기 재채기가 터졌다. 감기기운 탓이었다. 30대 말로 보이는 주인이 살갑게 물었다. “어르신, 추우세요?” 갑작스런 친절엔 약간 당황하는 법, 게다가 내가 늙었다니, 답은 물론 ‘괜찮소!’였다. 사실은 젊은 사장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자넨, 추운가?’ 건장했지만, 추워보였다. 그의 미래는 떨고 있었다. 추위에 몸서리치던 유년시절이 겹쳤다.


6·25전쟁이 끝난 2년 뒤 혹한에 한 생명이 태어났다. 소백산 자락 마을 어느 초가에서 산모는 산통을 앓았고 아기는 불명열에 생사를 오갔다. 조부모는 기어이 포기했는데, 아기는 생환해 55년생, 100만 명 베이비부머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 71만 2414명이 살아남았고, 그 아기는 베이비부머 맏형이 됐다. 지난 세월은 추위와 신열이었다. 단칸방 윗목에 놓인 그릇 물은 밤새 얼었다. 앉은뱅이 책상에서 국·산·사·자를 외웠다. 그 중 15%만 대학에 진학했다. 남자는 농군, 공돌이가 됐고, 여자는 삼순이가 됐다. 식모, 버스차장, 공순이의 시대가 열렸다(정찬일, 『삼순이』).


공돌이는 디스코텍을 들락거렸고, 공순이와 버스차장은 월급을 아껴 집에 송금했다. 버스비를 현금으로 내는 통에 삥땅이 잦았다. 차장의 몸수색은 일상사였다. 그래도, 제복을 입은 대학생 요금은 자주 눈감아줬다. ‘공부 잘 해라’-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공부대신 소설을 끼고 살았다.


유신 시대, 친구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강의실은 의미를 잃었다. 성장, 새마을 노래, 독재 타도가 최루탄 가스와 섞이던 시절에 의기투합할 목표를 찾아 헤맨 청춘들이 많았다. 김부겸, 심재철, 김성식이 선두에 서고 조희연, 김석준이 따랐다. 구로공단과 경인 지역에 2천 명에 달하는 청춘이 위장 취업했다. 캠퍼스든, 공단이든 그들이 끌려가는 장면은 추웠다.

베이비부머 대다수는 증산, 수출, 건설의 전사였다. 그 덕에 방황하던 청춘들도 자본주의의 거창한 대의를 논박할 환경을 획득했다.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3만 명 젊은 여공들이 밀물처럼 들어갔다가 썰물처럼 나왔다. 모든 공단이 그들로 붐볐다.


1989년 한국 TC전자 노조위원장이 투신을 시도했는데 백골단에 의해 저지됐다. 당시 26세, 살아있다면 그녀는 이제 도시중산층 어엿한 마나님이 됐을 테고, 아들에게 조촐한 카페를 차려줬을지 모른다. 디스코텍의 공돌이들은 마찌꼬바(작은 공장)를 잘 굴려 조금 커진 사업장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뒤늦게 태극기부대에 합류했다.


작년 말, 고교 동창회 사진이 휴대폰에 실려 왔다. 초로의 얼굴들, 까마득한 세월을 잘 견뎠다. 부모 봉양과 자식 농사를 졸업한 표정들, 수고했다. 일인당 국민소득 50불에서 태어나 3만 불 시대를 질주한 이들이 잘 못한 게 있다면 후세대가 신나게 뛸 환경을 못 일궜다는 점이다. 추운 가난을 탈출하려는 신념이 개혁 열망을 덮었다. 베이비부머가 물러가고, 그 자리를 86세대가 메운 지 몇 년이 지났다.


선거법, 공수처법을 해결한 86세대의 선두주자 이인영 원내대표가 당차게 말했다. 이제 ‘사회적 패권을 교체하겠다’고. 사회적 패권? ‘재벌, 특정언론, 편향적 종교, 왜곡된 지식인, 누구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세력’이란다. 거기엔 이미 86세대가 주류다. 비판 언론은 몇 안 남았고, 지식인은 반역이 업(業)이다. 종교는 보편 쪽으로 난 편향의 문(門)이다. 재벌 해체? 국민연금 지분을 늘리는 순간, 공기업, 즉 정권의 놀이터가 된다. 혹시, 지배층의 과도한 위세와 패악을 다스리겠다면 환영이다. 가난의 대물림을 막고, 지배층의 권력과 재산 탐욕을 잘라낸다면 환영이다. 베이비부머가 못 다한 일이기에.


그런데, 패권을 갈아치우고, 거기에 진보 세력을 밀어 넣겠다면 큰일이다. 명패만 남은 한심한 보수를 옹호함이 아니다.

1947년 평양 광장에서 김일성이 외쳤다. 공산혁명을 방해하는 ‘적대 계급’은 ‘참회하라!’고. 양반 지주, 부역 지식인, 종교인, 기업인-이듬해, 이들은 ‘동요 계급’과 함께 모조리 숙청됐다. 지난 대선, 문재인후보가 말한 ‘시대 교체’는 뉴리치, 뉴하이가 사회적 책임을 솔선하는 포괄적 변혁 개념이었다.


패권은 그람씨(A. Gramsci)의 ‘헤게모니론’에서 나왔다. ‘패권 교체’는 혁명이다. 민주주의를 ‘패권’으로 인지하는 운동권 정치의 위험을 어찌하랴. 민주주의는 합의 정치다. 일그러진 한국사회에서, 진보 스스로가 편파적 패권 그룹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사회적 패권을 과거의 산물로 생각했을 터, 혹시 그 주역이 베이비부머인가? 경제 성장과 습속의 교체에 신열을 바친 그들이 주범인가? 일방적 매도? 패권교체란 말에 베이비부머는 ‘참회하라’는 명령이 어른거려 하는 말이다. 낡은 혁명의식, 집권당의 패권을 위해 세대의 역사(役事)마저 총체적 과오로 낙인찍는 발언이란 생각에 미치자, 정말 난데없는 추위가 몰려왔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