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4.07 이한수 기자)
새 책에서 직설적으로 비판
"문 대통령, 조국사태 사과 없어 국론 분열"
"유시민은 프락치사건 있었던 1984년에 갇혀있어"
“문재인은 최소한의 상도덕마저 지키지 않았다”
“유시민은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있었던) 1984년 9월의 세상에 갇혀 있다”
“‘어용 시민’으로 칭하는 이들은 진보언론마저 ‘어용’이 될 것을 요구했다”….
보수가 비판하는 진보의 행태가 아니다.
진보 성향 지식인 강준만(64) 전북대 교수는 7일 출간한 책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인물과사상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을 실명 비판하고
이른바 ‘문빠’ 지지층이 가져온 폐해를 지적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국 사태’ 이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진보 진영의 위선을 강하게 질타하는 등 진보 지식인의 ‘진영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약속한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인물과사상사 제공
강준만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문재인 대통령)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끝장내겠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인 증거다.”
강 교수는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해 조국이 사퇴했지만, 문재인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조국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드러냄으로써 제2차 ‘국론 분열 전쟁’의 불씨를 던졌다”면서
“이는 문재인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내용과 상반된 것이다.
어렵고 고상한 이야기할 필요 없다. 그는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 강준만 교수는 그에 대해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일어난 1984년 9월에 갇혀있다"고 했다.
유시민 이사장에 대한 비판은 더 신랄하다.
강 교수는 유 이사장이 주창한 ‘어용 지식인론’이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하나의 절대적 좌표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유 이사장은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 직전 “진보 정부에 대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고 주장했다. 강준만 교수는
“맹목적인 당파성을 ‘진보’의 자리에 올려놓고 ‘어용’이라는 말 안에 녹아 있어야 할 수치심을 지워버렸다”면서
“수치심을 지워버린 효과 때문이었을까? 인터넷엔 자신을 ‘어용 시민’으로 칭하는 이들이 대거 등장했으며,
이들은 진보 언론마저 ‘어용’이 될 것을 요구했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유시민은 아직도 ‘서울대학교 프락치 사건’이 일어났던 1984년 9월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민주화가 이루어질 대로 이루어진 오늘날에도 유시민은 그 시절의 선명한 선악 이분법의 사고틀에 갇혀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란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 9월 서울대 학생들이 학교 내에 있던 타 학교 학생 및 민간인 4명을
정보기관 프락치(첩자)로 오인해 감금하고 물고문·폭행 등을 가한 사건이다.
유시민 이사장은 당시 사건에 연루돼 징역형을 받았고, 이때 쓴 ‘항소이유서’가 명성을 얻었다.
강 교수는 “1980년대의 운동권을 지배했던 사고 가운데 ‘조직 보위론’이란 게 있다. 운동 조직을 적의 공격에서
보위하기 위해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조직 밖에 알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라며
“유시민은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 그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조직 보위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라고 했다.
강준만 교수의 신간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인물과사상사
강 교수는 소위 ‘문빠’가 진보 언론을 ‘어용 언론’으로 만들려는 행태도 강하게 비판했다.
진보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뉴스타파’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 검증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2000여명 후원자가
이탈했다. 뉴스타파는 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한 직후 문재인-윤석열이 같은 편으로 보였을 때
윤 총장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했다가 3000여명 후원자가 이탈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후 문 대통령과 윤 총장 입장이
다른 것으로 나타나자 이번에는 ‘뉴스타파’에 사과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문빠’는 경향신문·한겨레 등 이른바 진보 언론에도 절독하겠다고 위협하며 ‘어용 언론’이 될 것을 요구했다. 강 교수는
“정부 여당에 종속된 ‘기관 보도원’ 노릇이나 하라는 요구가 도대체 그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단 말인가?
‘어용’을 철저히 실천하는 북한이나 중국의 언론 모델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을까?”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책 출간 이유에 대해 “왜 우리는 일반 소비자의 갑질에 분노하면서도 약자를 상대로 한
정치적 소비자의 갑질엔 침묵하는가. 왜 우리는 민생이야말로 소비의 영역임에도 소비를 자본주의의 죄악과 연결시켜
백안시하는 위선과 오만의 수렁에 빠져 있는가”라며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런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언론학자로 정치·사회·문화 비평 책을 줄곧 내고 있는 진보 성향 지식인이다.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를 모토로 잡지와 책 형태를 혼합한 ‘인물과사상’ 시리즈 33권 등 저서 다수를 출간했다. 1990~2000년대엔 주로 보수언론 비판에 집중했으나 2010년대 중반 이후 ‘싸가지 없는 진보’ ‘강남 좌파’ 논쟁을 벌이며 이른바 진보의 ‘진영 정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7/2020040703620.html
출판사 서평 |
“유권자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소비자’로 거듭날 수 있는가?” 즉, 유권자가 투표하듯 소비자가 시장에서 특정한 목적을 갖고 구매력으로 투표한다고 보는 것인데, 시장을 정치적 표현의 장(場)으로 간주해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대신 기업에 투표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정치가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 가운데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투표가 요식행위일 뿐 선거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로 무장하고 있다. 오히려 일상적 삶에서는 유권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그 힘이 더 크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살아간다. 소셜미디어 혁명과 참여의 문제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소셜미디어가 여론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소셜미디어의 속성과 부합되는 ‘따로 그러나 같이’라는 슬로건이야말로 ‘쇼핑’과 ‘투표’를 화해시키는 길이 아닐까? ‘정치 정상화’의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네티즌 사이의 설전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한 네티즌이 “신세계는 소상점들 죽이는 소형 상점 공략을 포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영업자들 피 말리는 치졸한 짓입니다”라는 글을 쓰자 이에 정용진이 ‘소비자의 선택’을 강조하면서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라고 대꾸한 것이다.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념적ㆍ정치적ㆍ윤리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소비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간 ‘소비자’는 ‘시민’에 비해 비교적 이기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어왔지만, 그런 구분은 사라져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비 행위를 통해 시민으로서 자각성을 갖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성급한 질문일망정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한복판에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거나 ‘운동’으로까지 부를 정도의 규모는 아니어서 그렇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이미 우리의 일상적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소셜미디어 혁명으로 인해 우리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특정 상품ㆍ기업ㆍ업소에 관한 평판 위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업들이 거의 예외 없이 스스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치고 나선 것이야말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영향력을 말해주는 좋은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상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보이콧팅, 지지하는 바이콧팅 등의 정치적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소비자 운동과 구별된다. 일반적 소비자 운동은 상품과 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소비자들의 피해를 알리고 해결하는 데 주력하는 반면,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부터 기업ㆍ경영자의 행태에 이르기까지 매우 포괄적인 범주에 걸쳐 이념적ㆍ정치적ㆍ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정치화’한다.
그런 고려 없이 개인적인 신념을 우선시하는 윤리적 소비, 국제관계에서 제3세계 생산자에게 정당한 이득을 주어야 한다는 ‘공정 무역’, 제3세계 공장에서 저질러지는 노동 착취에 반대하는 운동, 관광지의 주민들과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 관광’까지 포함한다.
우파는 시장질서의 교란과 시장에 대한 정치적 규제의 가능성을 이유로 비판하고, 좌파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으로 정치를 약화시키는 반(反)정치 행위라는 이유로 비판한다. 기존 이분법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운동이 좌에 속하는지 우에 속하는지 궁금해하지만, 이 운동은 반자본주의 운동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운동도 아니다. 현 시장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긴 하지만, 자본주의를 다른 걸로 대체하는 혁명보다는 개혁을 원하는 쪽이다.
오늘날 시장이나 정치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장과 정치를 정상화화는 데에나 힘을 쓸 것이지, 시장과 정치의 실패로 인해 나타난 운동에 시비를 걸 일은 아니라는 게 정치적 소비자 운동가들의 생각이다. 시장ㆍ정치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상호 보완도 가능하니,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이른바 ‘소비 공동체’와 ‘브랜드 공동체’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기존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나타난 새롭고도 강력한 공동체다.
공동체 생활에 굶주린 미국인들이 친구와의 약속 장소, 가벼운 회의 장소 등 제3의 장소에 대한 강렬한 수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기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에 커피 전문점이 과잉일 정도로 많이 늘어난 것은 여러 경제적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공동체적 소통의 필요성과 맞아 떨어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비’를 ‘진보’의 적으로만 간주해온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 10대 팬덤에 대해 눈을 흘기면서, 그런 팬덤의 사회적 잠재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약한 연결의 힘’이다. ‘약한 연결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자. ‘디지털 혁명’으로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성세대는 ‘관계’를 소중히 해왔다지만, ‘디지털 혁명’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젊은 세대는 그런 ‘관계를 중시하는 생존술’에 의문을 품고 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을망정 모두 다 눈으로 “끈적이는 관계는 싫어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들은 부담 없는 약한 연결을 원한다. ‘약한 연결’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인 셈이다. 그건 바로 “소비자는 왕이다”는 근거 없는 미신이다. “소비자는 왕이 아니라 봉이다”는 반론도 있지만, 소비자를 정말 왕으로 대접하는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의문이 강하게 들긴 하지만, 중요한 건 널리 외쳐지는 이 미신적 슬로건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람들이 약자를 대상으로 ‘갑질’을 하는 심리적 근거로 활용되어왔다는 점이다.
‘소비자=왕 모델’은 ‘갑질 모델’이자 ‘착취 모델’이다. 소비자에겐 권리만 있는 게 아니라 의무도 있다는 의식이 널리 확산될 때에 비로소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소비자는 왕이다”는 근거 없는 미신에서 벗어나 시민 소비자로서 권리와 책임에 투철해야만 ‘갑질’과 ‘착취’를 없앨 수 있다.
많은 지식인이 ‘시민의 소비자화’를 개탄하지만, 일부일망정 명분을 내세운 시민이 명분을 내세우지 않는 소비자보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다분히 허구적인 ‘시민 우위론’을 내세운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윤리적인 소비자‘로 살고 있는 이중성과 위선을 깨는 풍토를 조성하는 게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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