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사 부르봉-파르마 스페인 공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했다. 유럽 왕실 일가가 코로나로 숨지기는 처음이다. 마리아 테레사 공주는 영국 자비에르 왕자와 스페인 파르마 공작의 자녀로 현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는 사촌 관계이다.
지난달 30일 보도된 '스페인 마리아 테레사 공주 코로나19로 사망…향년 86세'라는 제목의 기사 중 일부입니다. 유럽 로열패밀리 일원이 코로나19로 사망한 건 처음인 터라 그의 죽음은 전 세계 언론에서 다뤄졌습니다. 중앙일보 역시 미국 CNN 보도를 인용해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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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sin'으로 소개한 외신…번역하면 사촌?
그러나 이후 기사에 서술된 '사촌 관계'라는 표현이 오해를 불러왔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 표현으로 인해 고인이 스페인 현 국왕인 펠리페 6세의 사촌누나, 즉 선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조카로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사촌 관계'라는 표현은 CNN 기사 원문 중 ‘princess, a distant cousin of King Felipe VI’라는 문구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CNN 외에 다른 영어 매체도 'cousi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마리아 테레사 공주는 펠리페 6세의 사촌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cousin'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사촌이라고 하지만, 한국처럼 촌수를 따지지 않는 현지에선 직계가 아닌 친척을 통칭하곤 합니다. 따라서 CNN의 'distant cousin'이란 표현도 먼 친척 정도로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특히나 복잡하게 혈연이 얽혀있는 유럽 왕실에서의 'cousin'이라면 더욱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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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14세 손자가 세운 스페인 부르봉 왕조
마리아 테레사 공주와 펠리페 6세의 관계를 따져보려면 17세기로 거슬러가야 합니다.
현재 스페인 왕실은 프랑스 부르봉 혈통입니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가 부르봉 왕조의 초대 왕이죠.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마지막 왕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죽자 루이 14세는 펠리페 5세를 스페인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1700년 펠리페 5세가 즉위했지만, 영국·오스트리아 등은 서유럽 양강인 프랑스와 스페인이 통합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동맹을 맺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 전쟁은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종결됐고, 펠리페 5세는 스페인의 왕으로 승인받는 대신 자신과 후손의 프랑스 왕위계승권을 영구 포기한다고 각서를 씁니다.
왕좌를 지키고 스페인의 새 왕조를 세운 펠리페 5세에겐 두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계승 1순위는 첫 번째 아내 마리아 루이자 사이에서 낳은 아들, 루이스 1세였죠. 그러나 펠리페 5세 생전 왕위를 이어받은 그는 급사했고, 펠리페 5세가 복위합니다. 펠리페 5세 사망 뒤 왕위를 계승한 건 넷째 아들인 페르난도 6세입니다. 그러나 페르난도 6세는 후사를 얻지 못한 채 사망했고, 펠리페 5세의 두 번째 아내인 파르마 공국의 상속녀 이사벨 파르네제의 아들 카를로스 3세가 왕좌에 오릅니다.
이후 카를로스 3세의 아들인 카를로스 4세, 카를로스 4세의 장남인 페르난도 7세까지 스페인 왕실은 아들을 통해 왕위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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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도 왕위 계승할 수 있다? 없다?
문제는 페르난도 7세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스페인은 살리카법(여자의 왕위계승을 인정하기 않는 제도)을 따랐기 때문에 왕위는 페르난도 7세의 남동생인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에게 넘겨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페르난도 7세는 아들·딸 상관없이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살리카법을 폐지합니다. 이에 따라 이사벨 공주는 페르난도 7세가 사망한 뒤 불과 3살의 나이에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하지만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는 여왕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을 ‘카를로스 5세’라 칭하며 정통 후계자를 자처합니다. 이로 인해 스페인에선 7년간 ‘카를로스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때부터 카를로스파(몰리나 백작 카를로스의 혈통을 옹립하려 한 세력)가 파벌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들은 이사벨 2세의 아들 알폰소 12세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살리카법을 내세우며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가 적법한 후계자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계속 왕권을 주장하며 19세기에만 3차례 내전을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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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 노린 카를로스파…내전까지 벌였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 스페인은 공화정 수립에 따라 왕정을 종식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해 왕실을 복원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때 다시 왕실로 돌아온 이들은 이사벨2세의 후손입니다. 자신의 사후 왕정 복고를 선언한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탈리아로 망명했던 알폰소 13세의 손자인 카를로스를 후계로 삼은 겁니다. 1975년 이사벨 2세의 4대손인 카를로스 1세가 즉위했고, 왕권을 향한 카를로스파의 꿈은 다시 수포가 됩니다.
현재 펠리페 6세에게도 아들은 없습니다. 스페인 왕위 계승 1순위는 장녀인 레오노르 공주이며 2순위는 차녀인 소피아 공주입니다.
사실 카를로스파의 직계 역시 남계 후손이 끊기며 1936년 단절됐습니다. 더는 여왕의 후손인 현재 왕실을 부인할 명분이 사라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남성 후계자를 찾아 나섭니다. 프랑수아 자비에르 드 부르봉 파르마 공작입니다. 그는 펠리페 5세의 아들이자 카를로스 3세의 친동생인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시조 펠리페의 후손입니다. 부르봉 가문의 분가인 부르봉-파르마 가문은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 공국을 통치했습니다.
자, 드디어 코로나19로 사망한 마리아 테레사 공주가 등장합니다. 카를로스파가 왕위 계승자라고 추대한 자비에르가 바로 마리아 테레사 공주의 아버지입니다.
다만 친족 관계를 이르는 어휘가 사회·문화와 밀접하게 관련 있다는 점을 간과해 기사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소 오해가 발생한 겁니다.
한국시간으로 1일 오전 기준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스페인의 코로나19 확진자는 23만 9000명이 넘습니다. 사망자도 2만 5000명에 육박합니다. 미국에 이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만 정점을 찍은 뒤 확진자·사망자 숫자가 감소하면서 봉쇄 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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